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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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尹 대통령, 양곡법 거부권 행사… 巨野 입법 폭주 멈추라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 비판
야당은 재의결·대체 입법 추진
불통 이미지 부각 전략 접어야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법률안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자, 2016년 5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약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양곡법 개정안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자,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거부권 행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발로 정국이 경색되고 일부 농심(農心)이 동요하지만,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한 수순이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매년 1조원 이상의 국가 예산을 쏟아부어야 하고 농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퍼주기’ 입법이다. 쌀 소비가 계속 줄고 밀, 콩 소비는 느는 현실에서 어떻게 수매 의무화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는가. “식량 안보” 운운도 어불성설이다. 국회 처리 과정 역시 문제투성이였다. 민주당은 상임위의 안건조정위를 꼼수로 무력화시킨 것도 모자라 법사위를 패싱하고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등 무리수를 남발했다.

이제 공은 국회에서 개정안 처리를 주도했던 민주당에 다시 돌아오게 됐다. 양곡법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을 주장하는 등 강력 반발하는 민주당은 재의결 추진을 공언했다. 그러나 재의 요구된 법안은 국회에서 재적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통과되기 때문에 현재 의석 구조상 폐기가 확실하다. 이에 민주당 내 일각에서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대체할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은 노란봉투법, 방송법 개정안, 간호법 등 다른 법안도 줄줄이 밀어붙일 태세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독선·불통’, ‘의회 무시’ 이미지를 부각하고, 자신들은 생색만 내려는 전략이다. 민주당 마음대로 본회의 직회부가 가능한 상임위가 6개나 돼 얼마나 더 많은 법안이 일방 처리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반시장적 포퓰리즘 입법을 고집하는 것은 제1당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국정 발목 잡기라는 이미지가 쌓여 중도·무당층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야가 끝내 포퓰리즘 입법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도 잇따라 거부권을 행사할 텐데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