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살림이 위태롭다.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2년 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채무는 1년 전보다 97조원 늘어난 1067조원이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49.6%였다. 금액·비율 모두 사상 최대치다. 국민 1인당 국가채무는 2068만원으로 처음 2000만원을 돌파했다. 세수가 52조원이나 더 걷혔지만 관리재정수지가 사상 최대인 117조원의 적자를 냈다. 최근 3년간 적자액이 무려 320조원인데 이러다 나라 곳간이 거덜 나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정부가 미래에 갚아야 하는 공무원·군인 연금 등 연금 충당 부채 등까지 합친 국가부채는 더 심각하다. 그 규모가 2326조2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30조9000억원이나 불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년6개월 전 한국의 국가채무가 35개 선진국 중 가장 가파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이 전망이 현실화하는 형국이다. IMF에 따르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26년 66.7%까지 치솟게 된다. 재정과 연금 적자가 이런 추세로 늘어나면 파국적 위기를 피할 길이 없다.
사정이 다급한데 재정준칙 법안은 7개월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지난해 9월 관리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유지하되 국가채무가 GDP의 60%를 넘어서면 그 비율을 2% 이내로 묶는 재정준칙 법안을 제출했다. IMF에 따르면 세계 106개국이 재정준칙을 도입해 시행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준칙이 없는 곳은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정치권은 본 척도 않는다. 이도 모자라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연간 수십조원 예산이 소요되는 포퓰리즘 법안을 쏟아내고 있으니 기가 찬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도 표를 의식해 선심 행정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재정 건전성은 경제 위기를 막을 최후의 보루이자 국가의 미래가 걸린 과제다. 과거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 탄탄한 재정을 디딤돌 삼아 위기 터널을 빠져나왔다. 가뜩이나 올해는 복합위기 속에 경기 둔화와 기업 실적 악화까지 겹쳐 4년 만에 20조∼30조원의 세수 부족 사태가 빚어질 공산이 크다. 한정된 재원을 필요한 곳에만 아껴 쓰겠다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한 때다. 정치권은 퍼주기 예산과 선심성 사업 등으로 건전 재정을 훼손하는 요구를 멈춰야 한다. 실효성과 구속력이 있는 재정준칙을 만들고 시행 시기도 최대한 앞당겨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사설] 1인당 나랏빚 2000만원 넘는데 재정준칙은 국회서 낮잠
기사입력 2023-04-05 01:05:13
기사수정 2023-04-05 01:05:13
기사수정 2023-04-05 01:05:13
Copyrights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