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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교훈 잊었나… 짙은 안개 속 내비 끄고 ‘깜깜이 운행’ [연중기획-안전이 생명이다]

세월호 9주기 ‘선박 안전’ 점검

구명조끼함 열쇠로 채워져
비상시에 승객들 이용 제한
일선 현장 안전 불감 여전

낚시포인트 숨기려 위치장치 ‘OFF’
세월호 후속 카페리, 기계 고장 반복
운영 과실 등 겹쳐 한동안 반쪽 운행
배 밖 손 내미는 승객에 제재 방송 無

전문가 “시스템 갖춰도 지키는 건 별개
정부가 안전문화 확산에 집중 나서야”

구명조끼 100∼110% 천차만별
어린이용·유아용 구별도 모호해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아 세계일보가 선박 안전을 점검한 결과, 참사 후 경계감이 높아지고 제도 개선도 있었으나 현장의 안전 불감증과 안전 대비 부족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유람선은 구명조끼를 상자에 넣어놓고 열쇠로 잠가 승객 스스로 위험하다고 판단할 경우 자력 사용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주요 항로에서는 소형 어선 선장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낚시 포인트를 숨기기 위해 어선위치추적장치(V-PASS)를 일부러 작동하지 않아 주변을 운항 중인 여객선에는 암초와 같은 위험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남 목포에서 홍도를 오가는 여객선 유토피아호 조타실에서 김택균 목포지방해양수산청 해사안전감독관(오른쪽)이 선장에게 바다내비로 알려진 항해장치 e-내비게이션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목포=김선덕 기자

2014년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생 250명을 포함해 304명(미수습자 포함)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세월호 참사가 지금도 우리 사회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해양·수상 안전 인식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초봄 행락철을 앞두고 지난달 17일 부산에서 운영 중인 A 유람선을 점검했다. 부산에는 △태종대(5개 업체 각 1척 운영) △해운대(미포, 1개 업체 2척 운영) △오륙도(이하 각 1개 업체 1척 운영) △용호만 △남항 5곳에서 9개 업체, 총 10척의 연안 유람선이 운영되고 있다. A 유람선은 이용객 수에 따라 평일엔 대략 오전 11시∼오후 3시 서너 차례 운항하고, 주말이나 휴일엔 7∼8회 운항한다.

 

선장을 포함해 정원 97명인 30t 미만 소형 유람선에 실제 승선한 인원은 24명(선장 포함). 대부분 가족 등 단체 관광객이다. 오전 11시20분쯤 선착장을 출발한 유람선이 태종대 전망대 앞바다에 이르자 강풍과 함께 파도가 높게 치면서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배를 때리는 거센 물결로 요동치거나 옆으로 기울어지는 아찔한 상태에서도 승객들은 위태로운 행동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갑판에선 아무런 안전장비 착용 없이 갈매기에게 과자를 준다든지 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부서지는 파도를 느끼려는 승객들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승객에게 안전 장비를 나눠주거나 안전을 위해 자제할 것을 알리는 방송은 전혀 없다.

 

◆선실에 있다는 구명조끼, 승객 접근 못해

 

강원 춘천시에서 가족여행을 왔다는 40대 김상윤(가명)씨는 “(유람선을 타면) 당연히 구명조끼를 착용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당황스럽다”며 “파도가 심해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유람선 관계자는 “가까운 연안을 운항하기 때문에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아도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갑판 위의 천막 아래 설치된 유람좌석 부근에는 구명조끼가 하나도 없다. 갑판 선미에 ‘성인용 구명조끼 10개 들어 있다’고 쓰인 구명조끼함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열쇠로 단단히 잠겨 있어 승객 스스로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꺼내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갑판 아래 선실에는 승객이 접근하지도 못하게 했다.

부산에서 운영 중인 유람선의 구명조끼함. 열쇠로 단단히 잠겨 있어 승객 스스로 위험하다고 판단해도 자력으로 꺼내 쓸 수 없는 상황이다. 부산=오성택 기자

승선 인원 대비 유람선이 구비해야 할 일반 구명조끼 수량은 유선(遊船)및도선(渡船)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100%(소아용 20% 추가 구비), 선박안전관리법 행정규칙(선박구명설비기준)에 따르면 110%(어린이용 10%·유아용 2.5% 추가 구비)다.

 

해경은 5일 이와 관련해 해당 유람선 선실 내부에 구명조끼 115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지난 1월 점검 시 확인했다는 선실 캐비닛에 담긴 구명조끼 사진을 보여줬다. 문제는 규정대로 구명조끼 수량은 채웠어도 열쇠로 잠긴 상자에 보관하거나, 승객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장소에 있어 비상시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1994년 10월 발생한 충주호 유람선 화재 당시 희생자 30명(전체 승선자 132명) 중 불에 타 숨진 3명을 제외한 나머지 27명(행방불명 포함)이 익사했다는 점에서 구명조끼 문제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해경 관계자는 “구명조끼를 실내나 실외 어디에 배치하라는 규정은 없다”면서도 “해당 유람선이 승객이 주로 이용하는 갑판에 구명조끼를 더 많이 배치하지 않은 이유는 잘 모르겠다. 배가 기울면 승객들이 구명조끼가 있는 곳까지 찾아가기 힘들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근방 해역 선박 충돌 위험

 

지난달 17일 전남 목포신항.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노란색 리본이 묶인 북문 철조망 너머로 바다에서 인양한 세월호가 녹슨 모습으로 육상에 거치되어 있다. 이날 연안여객선 유토피아호(287t, 최대 승선 정원 365명)에 대한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의 안전점검이 있어 동행했다.

 

김택균 감독관은 “요즘 같은 시기에는 짙은 안개가 잦아 사고 위험이 높은 만큼 가장 먼저 항해 장비를 중점 점검하고 있다”고 했다. 배의 심장부인 조타실에 오른 김태균 감독관이 선장에게 던진 첫 질문도 일명 ‘바다 내비’로 알려진 항해 장치 ‘e-내비게이션’과 관련한 것이다. “감지는 잘 되느냐”, “주변 선박과의 충돌 위험은 없느냐”고 물었다.

갈 길 먼 선박 안전 세계일보가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아 선박 안전을 점검한 결과, 일부 유람선은 구명조끼를 상자에 넣어놓고 열쇠로 잠가 승객 스스로 위험하다고 판단해도 사용하기 어렵게 하는 등 안전불감증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해역에서 침몰 중인 세월호. 세계일보 자료사진

선장은 이에 “최근 들어 5t 미만의 소형 어선들이 V-PASS를 켜지 않고 다닌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10척 중 4척 정도가 이 장치를 끄고 다니는 것 같다”며 “안개가 낀 날씨에도 이 장치만 켜고 운항하면 웬만한 해양 사고 발생 확률을 확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객선 항로에 있는 어선이 V-PASS를 끄면 위치를 알 수 없어 사실상 깜깜이 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 소형 낚싯배의 경우 선장만 아는 주요 포인트를 다른 배에 알리지 않기 위해 V-PASS를 끄고 운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사익(私益)이 대형 사고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특히 호남의 핵심 항구 도시인 목포와 인기 관광지 홍도를 잇는 여객선 루트는 한국의 대표적 항로 중 하나다. 남해고속과 동양훼리가 이 항로에 총 7척의 여객선을 운영하는데 지난해의 경우 38만명이 이용했다. 하루 1041명꼴이다. 홍도는 세월호가 좌초한 진도군 조도 병풍도 앞 해상에서 90㎞쯤 떨어져 있다.

 

김 감독관은 V-PASS 고의 가동 정지와 관련해 “지속적인 단속에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경 등 유관 기관과의 간담회를 통해 정식 안건으로 올려 깊이 있게 논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인천연안항에 정박 중인 2만7000t급 대형 카페리 비욘드 트러스트호. 세월호 참사 후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된 이 여객선은 잦은 고장으로 결항이 반복되다가 지난 3월 29일 여객 탑승이 재개됐다. 인천=강승훈 기자

◆세월호 후속 카페리는 잦은 고장

 

지난달 24일 오후 찾은 인천연안항에는 2만7000t급 카페리 비욘드 트러스트호가 정박해 있었다. 이 배는 길이 170m, 너비 26m, 높이 28m 규모에 승객 810명, 승용차 487대, 컨테이너 65개 등을 실을 수 있다. 세월호를 대신해 인천∼제주 항로에 2021년 12월20일 투입됐지만 잦은 고장으로 결항이 반복됐다. 지난 2월4일에는 엔진 부품 결함 발견으로 2주간 운항이 정지됐다가 같은 달 22일부터 여객은 태우지 않고 화물만 싣는 반쪽짜리 항해가 한동안 이어지다가 지난달 29일 여객 탑승이 재개됐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측은 기계적 결함과 함께 운영상 과실 등 여러 원인이 더해져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21일엔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70㎞ 떨어진 옹진군 덕적도로 향하는 쾌속선에 탑승했다. 예정된 시간에 인천항을 떠난 여객선 내부에서는 ‘항해 중 외부 출입 금지’, ‘흡연 땐 화재 경보음 울림’, ‘구명조끼 배치 현황’ 등을 안내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후 전방의 모니터에서 비상시 대처 요령에 관한 동영상이 5분쯤 틀어졌다. 안타깝게도 승객 약 50명 중 눈과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전무했다. 심지어 배정된 좌석이 아닌 자리를 자유롭게 차지하고 있었다. 한 승객은 “빈자리가 많은데 정해진 곳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선사 측에서도 강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본적인 착석 규정도 지키지 않는 시민 의식의 부재가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다.

 

전문가들은 안전관리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과 함께 안전 의식 확산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박영수 한국해양대학교 항해융합학부 교수는 “선박 안전 관리와 관련해 공공의 역할이 확대되고, 처벌 범위도 기존 실무자 위주에서 회사까지 확대한 것은 분명 안전 제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시스템이 잘 갖춰졌다 하더라도 잘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제는 정부가 안전 문화 확산에 집중해야 할 타이밍이다”라고 말했다.

 

◆안전장비 구비 기준 ‘제각각’ 현장 혼선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안전관리체계와 처벌규정을 대폭 강화하고 있지만 해양사고는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5일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3∼2020년 관리 대상인 내항 여객선 298척 중 연평균 사고 발생 건수와 선박 척수는 각각 98.5건과 58.4척이다. 같은 기간 인명피해를 동반한 사고도 연평균 11.1건 발생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제외한 사망·실종자는 6.3명, 부상자는 24.1명으로 집계된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운항 업무를 점검·지도하는 운항관리자를 기존 해운조합에서 공공기관인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으로 바꾸고 인력 규모도 73명에서 149명(본사, 12개 센터, 40개 파견지 및 촉탁고용직 포함)으로 2배 이상 늘렸다.

 

안전 기준 위반 시 처벌수준도 대폭 강화했다. 사업자 대상 과징금을 기존 최대 30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상향했다. 또한 여객 금지행위 위반 시 과태료 또한 최대 100만원에서 최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개정했다.

 

정부의 제도보완 노력에도 구멍은 여전하다. 대표적으로 선박이 의무적으로 구비해야 할 구명조끼 수다. 세월호 참사 후 2015년 7월 개정된 선박안전법 행정규칙(선박구명설비기준)은 제2종선(국내운항 여객선)이 구비해야 할 구명조끼의 수량을 최대승선 인원의 100%에서 110%로 늘리고 어린이용 10%, 유아용 2.5%를 추가로 갖추도록 했다. 이에 비해 유선(遊船)및도선(渡船)사업법 시행령은 유람선의 경우 여전히 최대 승선인원의 100%를 갖추도록 하면서, 소아용을 별도로 20%를 준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람선이라도 먼저 선박안전법 행정규칙의 규정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구명조끼를 승선 인원의 최소 110%를 준비해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유·도선사업법 시행령에 따라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또 유·도선사업법 시행령에서는 선박안전법 행정규칙과 달리 단순히 ‘소아용 구명조끼’라고만 규정해 크기가 다른 어린이용과 유아용 구명조끼의 현실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도선사업법 소관 부처인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용어 부분이나 전반적으로 수정과 관련해 논의를 해보겠다”며 “법이 만들어진 지 오래돼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부산·목포·청주=오성택·김선덕·윤교근, 서울=채명준 기자, 인천=강승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