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교 기숙사에 이른바 ‘블랙방’이 있었다. 다음 학기에 방을 같이 쓰기 싫은 친구, 즉 ‘블랙리스트’를 적어내 거기에 적힌 학생들끼리 모인 방이다. 블랙방 학생들은 소외감과 좌절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따돌림을 받는 집단이란 꼬리표까지 따라붙었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 정모씨 학교폭력 재심 판결문에 담긴 회의록에 따르면 해당 학교 교사는 정씨에 대해 “본인이 급이 높다고 판단하면 굉장히 잘 해 주고 급이 낮다고 생각되는 학생은 모멸감을 주는 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습관이 있다“고 평했다. 힘의 유무에 따라서 급의 높낮이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왜 힘이나 연줄에 따라 편 가르기가 만연하는 것일까? 서구사회는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합리주의 문화가 발달했으나 한국은 정과 따뜻함을 중요시하는 문화 때문에 연대와 연줄을 바탕으로 하는 집단 문화가 발달했고, 연줄로 뭉친 집단은 제2의 가족이란 유대감을 형성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고 편들어 주는 이익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힘도 돈도 연줄도 없는 약자의 경우 엄청난 불이익과 차별을 받는 사회적 적폐를 초래했다. 편 가르기는 내 편을 만들고, 패거리가 형성되면 구성원들은 내 편의 이익을 위해 선택적 정의로 법과 정의를 유린한다. 내 편이 잘못했는데도 잘했다고 우기고, 반대로 내 편이 없는 약자에게는 누명을 덮어씌우는 엄청난 반인륜적 만행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내 편 이익만 우선이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은 외면할 때 국가의 질서는 무너지게 된다.
법과 정의를 똑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법조계 인사는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의 연줄이 되지 않아야 한다. 만일 판사가 어떤 사건 해결의 연줄과 해결사 역할을 했다면 그 판사는 이미 법관으로서 자격과 신뢰를 상실했으며 그 사회의 법과 정의는 무너진 사회다. “아빠는 (검사라) 아는 사람이 많다.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을 받고 하는 직업”이라든가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는 정씨의 말은 법조계 연줄, 인맥과 돈, 그리고 힘(power)이 있는 사람만 승소할 수 있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재판이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손해를 입은 자가 있으면 그 반대 상황에 있는 이익을 얻은 자를 살피라고 했다. 만일 재판장이 손해를 본 자의 진술을 외면하고 이익을 얻은 자나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자의 말만 들어 주는 판결을 한다면 법률과 양심을 외면한 부끄러운 판사다. 억울하게 패소한 당사자들의 원한과 원망은 판사에겐 양심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게 될 것이다. 승자와 패자 모두가 수긍하는 합리적인 판결이 되려면 법조인이 부귀에 아부하지 않고, 직업적 양심, 정의감 그리고 공평성이란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오판을 막고 법과 정의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힘과 돈이 있는 자의 이익보다 약자의 이익을 존중하는 합리주의 정신이 뿌리를 내릴 때 법과 정의가 비로소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선진 사회가 올 것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