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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복마전’에서 잉태된 강남 납치·살인… 풀리지 않은 의혹 모음 [사사건건]

지난달 29일 밤 11시46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아파트 도로변에서 사건은 시작됐다. 40대 여성 A씨가 납치됐고, 대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지난 5일 납치와 살인·시신 유기에 직접 가담한 혐의로 구속된 주요 피의자 이경우(36)·황대한(36)·연지호(30) 3명의 신상을 공개했다. 같은 날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재력가 유모씨도 강도살인교사 혐의로 체포됐다.

 

이번 사건은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수법, 윗선 의혹 등을 두고 다양한 의혹을 낳았다. 하지만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나면서 가상자산(암호화폐) 투자로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사건의 실체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세계일보 경찰팀은 이번 강남 납치·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된 갖가지 의혹 등을 살펴본다.

 

서울 강남 주택가에서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들이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의혹① 그놈들의 범행 동기

 

7일 경찰 등에 따르면 연지호와 황대한은 지난달 29일 납치한 A씨를 대전에서 살해한 뒤 대청댐 인근 야산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주범 이경우는 피해자를 범행 대상으로 지목하고 범행 도구를 지원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연지호는 31일 오전 10시45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지하철역에서, 황대한은 오후 1시15분 성남시 수정구의 한 모텔에서 검거됐다. 이경우 역시 같은 날 오후 5시40분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의 건물에서 긴급 체포됐다. 사건 발생 42시간만이었다.

 

연지호와 황대한의 범행 목적은 ‘돈’이었다. 연지호는 경찰에 “코인(가상화폐)을 목적으로 범행에 가담했다”며 “3600만원의 빚이 있는데, 범행에 가담하면 황대한이 변제해주겠다고 해서 동참했다”고 진술했다. 황대한은 “(공범으로부터) 4000만원을 받았다”는 이경우의 말을 듣고 범행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경우로부터 준비금 명목으로 두 차례에 걸쳐 총 700만원을 받았다.

 

이경우는 모든 혐의를 부인 중이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 발생 전 이경우가 코인업체 관계자인 재력가 유씨로부터 4000만원을 건네 받은 정황을 확인했다. 만약 ‘착수금’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면 이는 ‘청부 살인’에 해당한다. 경찰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배후 세력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의혹② 배후 세력으로 지목된 그들은 누구인가

 

경찰은 지난 5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한 백화점에서 유씨를 긴급 체포했다. 유씨 부부와 피해자 A씨는 각종 민형사 소송으로 얽혀 있었다. 대부분 가상화폐 투자 실패에서 비롯됐다. 이경우는 2021년 초 P코인 폭락으로 손실을 보자 유씨의 아내 황모씨를 찾아가 가상화폐를 빼앗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당시 A씨도 황씨를 찾아가 공동공갈 혐의로 수사받았으나 불송치됐다.

 

이후 같은 해 10월쯤 유씨 부부는 1억원 상당의 가상화폐 이더리움으로 투자한 P코인을 받지 못했다며 A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 이후 유씨 부부는 이경우에게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등 관계를 회복했지만, A씨와의 관계는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의 변호인은 지난 5일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부부가 2021년 이경우에게 3500만원을 빌려주면서 변제 기간 5년·이자율 2%로 차용증을 썼고, 비슷한 시기 유씨가 따로 건넨 돈 500만원은 쓰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씨 부부는 살인을 의뢰한 것이 아니라 이경우가 재력가인 자신들에게 수년간 돈을 요구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유씨 부부는 휴대전화 판매대리점을 운영하다가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투자에 성공해 자산을 불렸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최근 홍콩에 가상화폐 플랫폼 업체를 등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 측은 강도살인교사 혐의를 일절 부인하고 있고, 이경우 역시 혐의를 인정하지 않아 배후 세력에 대한 의혹은 안갯속을 걷고 있다.

 

◆의혹③ 피해자의 사망 시각과 숨진 원인

 

황대한과 연지호는 지난달 30일 오전 2시30분에서 3시 사이 암매장 장소인 대전 대청댐 인근에 도착해 피해자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해당 시점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가 대전시로 확인되고, 이들이 유기현장 부근에서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인 지난달 29일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황대한과 연지호는 밤 11시46분쯤 차에 타지 않으려 격렬히 저항하는 여성을 차량에 밀어넣고 현장을 떠났다. 30대인 피의자들이 여성을 납치하는 데 걸린 시간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뒤이어 그들은 26분 만인 30일 오전 0시12분 서울요금소를 빠져나갔고 0시44분에는 용인터미널사거리를 지났다. 범행 차량이 경찰 방범망에 다시 포착된 건 오전 6시56분 대전 유성IC에서다. 이 사이 이들은 A씨를 살해하고 오전 6시 전후 시신을 암매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약 2시간 뒤인 오전 8시쯤 경찰은 대전에서 버려진 차량을 발견했다. 차 안에서는 혈흔이 묻은 고무망치와 주사기 등이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지난 1일 부검 결과 A씨가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구두 소견을 냈다. 경찰은 차량 안에서 주사기가 발견돼 사망 과정에서 약물이 사용됐을 가능성도 고려해 정확한 사망 시점과 약독물 검출 여부 등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일에는 이경우 아내가 근무하는 강남구 한 성형외과를 압수수색했다. 범행 차량에서 발견된 주사기와 마취제가 이 병원에서 나온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의혹④ 최선을 다한 경찰, 무엇을 놓쳤나

 

사건 당일 납치 현장을 목격한 행인이 경찰에 112 신고를 접수한 시간은 밤 11시46분이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 7분여 뒤인 오후 11시53분에 도착했다. 그 사이 서울경찰청은 오후 11시49분 코드제로(위급사항 최고 단계)를 발령했다. 하지만 경찰은 약 1시간 뒤인 30일 0시52분 범행 차량을 특정할 수 있었다. 신고자의 잘못된 차종 진술과 심야 시간대에 좋지 못한 CCTV 화질로 차량번호를 확인하는 데 오래 걸렸다는 게 경찰의 해명이다.

 

경찰은 30일 0시56분 수서서 관내에 차량수배 지령을 내렸다. 이어 오전 1시5분 서울 전역에 일제 수배가 내려졌다. 하지만 같은 시각 범행 차량은 이미 서울을 빠져나갔다. 문제는 전국에 공유되는 수배차량 검색 시스템(WASS)에 범행 차량번호가 이보다 4시간 뒤인 오전 4시53분에 등록됐다는 점이다. 수서서 관계자는 “WASS 등록은 범인을 검거하는 수많은 방법의 하나”라며 “또 납치 발생과 같은 시간대에 A씨가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40대 여성이 가정폭력을 당한다는 유사한 신고가 접수돼 혼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이 같은 설명에도 시·도청 사이 공조가 늦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서울경찰청은 30일 오전 2시3분 대전경찰청에 상황보고를 공유했다. 수서서는 오전 3시18분 연지호의 범행 차량 차적지를 확인해달라고 대전 둔산경찰서에 요청했고, 이후 오전 4시23분부터 29분 사이 경기남부청·경기북부청·고속도로순찰대에도 공조 요청이 이뤄졌다. 피해자가 오전 2시에서 3시 사이에 살해된 점을 미뤄볼 때 공조 요청이 지연된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또한 사건 수사 지휘관들에게 보고가 늦어졌다는 점도 비판을 받았다. 백남익 수서서장은 납치 다음 날인 30일 오전 7시 첫 보고를 받았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도 문자를 통해 오전 6시55분 첫 보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의 해외 출장으로 현재 청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조지호 경찰청 차장은 오전 11시14분쯤 관련 내용을 처음 보고 받았다. 경찰은 이와 관련해 보고가 늦은 점을 인정한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경찰은 남은 의혹들을 풀기 위해 주범 이경우의 주거지와 근무지를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도 이 사건 관련 전담수사팀을 서울중앙지검에 설치했다. 경찰은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된 이경우, 황대한, 연지호를 이르면 오는 10일 송치한다.


김나현 기자 lapiz@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