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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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서울공화국’과 ‘도쿄일극집중’

日 문화청, 도쿄 떠나 교토로 이전
아베 수도권 집중 완화 추진 9년 만
한·일 모두 지방소멸 위기 닮은꼴
지방 부흥 위한 실험적 조치 필요

지난달 27일 일본 문화청이 도쿄를 떠나 교토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하루 전날 교토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축하행사에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참석해 “이전을 계기로 교토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문화진흥을 이끌자”고 격려했다. 주요 언론은 이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어 일본 사회의 관심을 반영했다. 일본 중앙 행정기관인 성청(省廳)의 지방 이전은 메이지시대(1868~1912년) 이래 처음이라 한다.

문화청 지방 이전은 2014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가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집중된 ‘도쿄일극(一極)집중’을 완화하고 지방 부흥을 꾀하기 위해 정부기관 이전을 추진한 것이 계기였다. 성청을 이전해 정부가 솔선수범을 보임으로써 민간기업의 분산을 이끌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42개 도부현(道府縣·광역지방자치단체)으로부터 성청, 연구기관 유치 신청을 받았고 교토는 문화청의 이전을 제안했다. 이전이 정식 결정된 것은 2016년이었다. 일본의 국보 중 20%가 모여 있는 교토는 문화재 행정이 주요 업무 중 하나인 문화청의 입지로 적당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교토 이전이 현실화하면서 문화행정의 강화, 문화재를 활용한 관광 진흥, 문화의 다양성 확보 등이 효과를 볼 거라며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기대가 이뤄져 지방 부흥으로 이어질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문화청 전부가 교토로 이전하는 게 아니어서 도쿄 체제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음달 15일 이전이 완료되면 직원의 70% 정도인 390명이 교토에서 근무하게 된다. 다른 기관과의 협업 성격이 강한 업무는 도쿄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도쿠라 슌이치(都倉俊一) 문화청 장관은 “(교토 이전으로)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 나도 3일은 교토, 2일은 도쿄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일극집중이 낳은 이런 풍경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것이 해결책일 텐데 일본 정부가 2014년 내건 성청, 연구기관의 이전은 많은 광역지자체의 바람과 구애, 9년이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문화청의 불완전한 이전이라는 단 하나의 결과를 얻었을 뿐이다.

인구집중은 이런 상황의 당연한 결과다. 지난해 도쿄권(도쿄도·가나가와현·사이타마현·지바현) 유입인구는 유출인구보다 10만명 이상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원격근무 등이 확산, 정착되며 인구분산 효과를 볼 것이란 전망과는 배치되는 결과다.

도쿄일극집중은 자연스럽게 ‘서울공화국’이라고까지 불리는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세종시를 건설해 중앙행정기관을 대거 내려보냈다는 점에서 나은 건가 싶기도 하지만 두 나라가 겪고 있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의 위기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지방 소멸’이라는 무시무시한 표현까지도 낯설지 않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갖은 방안들이 시도되고 있다. 인구 확보, 지역사회 정착 지원, 저출산 극복과 양육친화 환경 조성, 정주여건 개선 등 고민은 다양하고, 깊다.

그러나 수십 년 이어져 온 수도권 집중을 깨기가 쉬울 리 없다. 수도권 집중을 기반으로 짜인 사회구조가 워낙에 탄탄해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같은 지방 살리기 대책에는 비효율이란 딱지를 손쉽게 붙는다. 1000만명에 달하는 수도권 거주자들이 지방 소멸이라는 위기에 어느 정도의 경각심을 가졌는지도 의문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수도권 비대화와 지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상상 이상의 것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사하라 이즈루(牧原出) 도쿄대 교수가 문화청 교토 이전을 평가하며 아사히신문에 전한 말이 인상적이다.

“인구가 감소하는 일본에서 (지방을 살리기 위해서는) 실험적인 것을 할 수밖에 없다. 성청이 이전해 지방이 스스로를 일본의 한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나라의 모습이 바뀔 수 있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