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별난 변호사가 있다. 그가 처음부터 변호사였던 건 아니다. 원래는 항공사 직원이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2007년 대기업 계열 항공사에 들어갔다. 화물 수입 관련 업무를 맡아 즐겁게 일했는데 모기업이 힘들어지면서 항공사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더 늦기 전에 이직을 결심했다. 입사 3년 만에 관뒀다. 하지만 문과 출신인 데다 경력이 짧아 다른 항공사로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2기로 진학했다. 체질적으로 경쟁이나 분쟁을 싫어하는데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2013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자 역시 법원을 드나들며 다퉈야 하는 송무 일은 행복할 것 같지 않아 단념했다. 그렇게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이 됐다. 그러다 2021년 직장과 집이 있는 세종시에서 멀지 않은 시골에 땅을 사 농막까지 짓고 주말이면 ‘자연인’이나 ‘농부’로 변했다. 최근에는 진정한 ‘5도2촌’(평일 5일은 도시, 주말 2일은 농촌에서 보내는 것) 생활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주말엔 여섯 평 농막으로 갑니다’란 책을 펴내 작가 타이틀까지 얻었다.
한국교통연구원에서 민자도로 관리지원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는 장한별(44) 연구위원 얘기다.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장 센터장은 “농막을 짓게 된 과정과 시행착오 등을 기록해두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개인 블로그에 연재했는데 반응이 좋아 책으로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금 별난 변호사의 농막사용설명서’란 부제가 달린 책에는 장 센터장이 오랜 준비 끝에 충남 공주시 의당면 190평(약 628㎡) 땅에 농막을 짓고 손수 텃밭 농사를 하며 ‘파트타임 농부’로 살게 된 과정이 상세하게 펼쳐진다.
외갓집이 있던 전남 보성군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장 센터장은 “물론 아파트가 편리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며도 야외 공간이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적한 전원에 또 다른 집(세컨드 하우스) 하나를 마련코자 했지만 자금 조달과 1가구2주택 부담 등으로 접었다. 대신 차로 왕복 1시간 이내 지역에 밭을 사고 6평(20㎡)짜리 농막을 짓기로 했다.
어느덧 3년 차인 주말 농막 생활은 대만족이라고 했다. “평일 도시 생활에 쌓인 스트레스를 주말에 날리고 활력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벽돌을 쌓든, 풀을 뽑든, 물을 주든 단순한 일을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누가 나한테 ‘잘했네, 못했네’ 하지도 않고 성취감을 느끼니까요. 손수 재배한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해먹으니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동료와 친구들을 가끔 초대하는데 상당히 부러워합니다.”
그는 특히 신경 써야 하는 건 ‘이웃과의 관계’라고 했다. 어르신이 대부분인 원주민들을 존중하면서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급적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사소한 것이라도 나누는 게 이웃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분들께 배우는 것도 참 많아요.” 장 센터장은 농촌 생활 경험을 통해 직시한 농업인의 현실과 지역 소멸의 심각성도 책에 담았다. 마을의 30가구 중 40대와 50대가 사는 곳은 1가구씩이고, 나머지는 모두 60대 이상 어르신만 산다고 한다. 고향과 다름없는 보성도 인구가 3분의 1로 급감하고 주민 대부분이 고령이라 손꼽히는 소멸 지역이 됐다.
지역별 독특한 생활 방식과 문화, 요리법 등 농어촌 마을 어르신들의 지혜를 전수받을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우려한 그는 시대와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이 지역 공동화나 소멸을 가속화한다고 꼬집었다.
그가 생각하는 대안은 뭘까. “농촌은 생활·교육·의료·문화 인프라가 열악해서 귀농 엄두를 못 내는 상황에서 귀농인 위주의 정책도 개선해야 해요.” 귀농만 장려하기보다 비수도권 지역은 농민이 아니더라도 농지를 사서 농사와 휴식·여가 활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거나 20∼30평 정도 텃밭을 저렴하게 분양해주는 방법으로 우선 (농촌과) 관계된 (도시) 인구를 늘려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장 센터장은 “이를 위해 규제 중심의 농지법을 손질하고, 2021년 시행됐지만 실효성이 떨어지는 ‘치유농업법’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