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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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6대 제약강국 청사진 내놨지만… 5년내 달성 요원 [정부 ‘제약바이오 3차 대책’ 분석]

2022년 전통제약 1위 업체 매출 1조7758억원
日 13위 업체와 비슷… 세계와 격차 실감
블록버스터 신약·글로벌 50대사 하나 없어

정부, 신약 2개·글로벌 50대 제약사 2개
의약품 수출액 24조원 달성 등 내놨지만
지난 대책서 숫자만 고쳐 현실성 떨어져

CMO 세계 1위도 50대 제약사 포함 안돼
정부, ‘삼바’를 포함… 적절성 여부 논란
정부 “목표는 도전적으로 잡는 것” 반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제약·바이오산업이 국가 안보를 결정짓는 요소로 급부상했다. 국가 차원에서 제약·바이오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져 각국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정부도 지난달 24일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내놨다. 글로벌 패권 전쟁 속 정부 계획대로 한국이 제약 바이오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를 두고 기대감과 회의론이 교차한다.

 

◆韓 전통 제약사 1위, ‘日 13위’ 수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유한양행, GC녹십자, 종근당 등 전통 제약업체와 다른 제약사의 의약품을 대신 생산해주는 위탁생산(CMO) 업체로 나뉜다. 2022년 기준 연 매출 2조원을 넘긴 제약·바이오 기업 중 전통 제약업체는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각각 지난해 매출액 3조13억원, 2조284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들 기업의 본업은 각각 CMO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다.

전통 제약사만을 놓고 봤을 때 국내 매출액 1~3위 업체는 유한양행, GC녹십자, 종근당 순이다. 1위인 유한양행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7758억원이었다. 일본 제약 시장과 비교하면 13위인 도와(東和?品)(1656억엔)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의 제약·바이오 시장이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세계 제약시장은 2021년 기준 1조4200억달러(약 1870조원)이며,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4339억달러(571조원)로 추정된다. 제약시장만 봐도 전 세계 반도체 산업 규모인 5252억달러(692조원)에 비해 약 2.7배 큰 규모다. 이 시장은 2026년까지 1조7600억달러(2318조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와 비교해 한국의 제약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25조4000억원으로 세계 시장의 1.3%에 불과하다. 나라별 순위로는 13위이다. 미국 제약업계 매거진 파마익스가 지난해 집계한 글로벌 50대 제약기업 중 한국 기업은 전무하다. 미국(16개), 일본(7개), 독일(5개) 순으로 몰려 있고, 중국(4개), 인도(2개) 등 신흥국도 약진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은 세포치료제 등 특정 질환 맞춤 바이오신약 개발 등으로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보건 안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학습효과다. 이에 따라 각국은 보건 안보에 대응하는 정책을 뼈대로 삼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 인도의 원료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정책 목표를 내놨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이 공개한 보고서는 5년 안에 원료의약품(API)의 25% 이상을 미국에서 생산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은 지난해 5월 ‘5개년 바이오경제발전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바이오 안보 위험 관리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으로 바이오산업 공급망을 안정화한다는 계획이다.

◆“현실성 떨어지는 모순적 목표”

정부가 지난달 24일 공개한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은 2012년과 2017년 말 각각 1차와 2차 종합계획 이후 세 번째 발표된 것이다. 이번 계획에는 2027년까지 △글로벌 6대 제약강국 도약 △블록버스터급(연 매출 1조원 이상) 신약 창출 2개 △글로벌 50대 제약사 3개 △의약품 수출액 160억달러(24조원) 달성 등이 목표로 제시됐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조성 중인 K바이오백신펀드 규모를 2025년까지 1조원 이상으로 확대한다. 올해 상반기까지 5000억원, 2025년에 1조원 규모로 키우고 성과 분석 이후 추가 펀드도 조성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국가신약개발사업 신약 부문에 2030년까지 2조2000억원을 투입한다. 현재 36개 국산 신약 중 블록버스터급 신약은 전무하다.

이전 종합계획들에 따르면 이미 2020년에 △블록버스터급 신약 3개 △글로벌 50대 제약사 2개 △의약품 해외수준 23조원을 달성했어야 한다. 2023년인 현재 블록버스터 신약은 0개, 글로벌 50대 제약사도 0개, 의약품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81억달러(10조6000억원)다. 이 때문에 달성한 목표가 하나도 없는 가운데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목표를 숫자만 고쳐 발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데 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5개년 계획은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의 목표만 제시하는 게 아니다”라며 “목표는 도전적으로 잡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의약품 수출의 경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7~2021년 의약품 수출액은 연평균 25.4% 성장했다.

종합계획에서 주요 목표로 제시한 ‘글로벌 50대 제약사 3개’에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CMO를 포함하는 게 맞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다른 제약사의 의약품을 대신 생산하는 CMO는 일종의 장치 산업에 가깝다.

모순적이게도 보건복지부가 글로벌 50대 제약사의 근거 자료로 삼는 파마익스는 글로벌 50대 제약사를 발표할 때 삼바와 같은 CMO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CMO 분야 세계 1위인 스위스 론자도 이 때문에 파마익스가 발표하는 글로벌 50대 제약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전통 제약업체 관계자는 “삼바를 제약사로 보는 건 어폐가 있다”며 “따라서 정부가 글로벌 50대 제약사로 육성하겠다는 3곳 중 한 곳으로 포함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 최상수 기자

◆“파격적인 조세 감면  R&D 투자 이끌 것”…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

 

“제약·바이오 강국이 되려면 기업의 자발적 연구개발(R&D) 투자가 필수다. 조세 감면은 가장 현실적인 동기 부여 방안이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제약·바이오산업 육성 방안의 핵심을 이렇게 짚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4일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을 내놨다. 업계에선 긍정과 부정 평가가 공존한다. R&D 투자 확대와 메가 펀드 조성 등은 평가할 만하지만, 세제 지원 면에서는 아쉽다는 것이다.

 

2007∼2016년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몸담으며 제약산업지원단장 등을 역임한 정 원장을 지난달 29일 만나 업계가 바라는 정부 정책의 보완점을 들어 봤다.

 

정 원장은 이번 종합계획이 새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규과제들을 다수 담았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으로 4대 전략 중 R&D 강화에 ‘신변종 감염병 대응을 위한 치료제 신속 개발 체계 구축’ 내용을 포함한 것이다. 1, 2차 종합계획에는 없던 내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4대 전략 중 수출 지원 부분에 ‘미국 행정명령 대응 및 규제기관 대 규제기관(R2R) 협력 강화’도 미국의 자국 공급망 강화 기조를 반영한 것이다.

사진=뉴스1

보건복지부는 종합계획에서 “기획재정부와 논의해 임상시험 비용에 대한 조세 인센티브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파격적인 조세 감면 계획이 구체화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신약 개발과정에서 해외 위탁 임상 3상 시험 연구비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고, 2021년 세법개정안에서 바이오시밀러 3상 임상시험 기술도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했다. 업계에서는 해외 임상 3상이 아닌 1상에 대한 지원책도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 원장은 그 연장선에서 기업의 독자 투자보다 대학 등과 협력해 연구·개발할 시 세제 혜택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2015년부터 기업과 연구기관이 협력해 R&D를 하는 경우 더 높은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보건복지부는 산·학·연·병 등 신약개발 주요 주체 간 공동연구 강화를 위한 개방형 혁신 R&D 과제를 내년부터 신규 추진할 계획이다.

 

정 원장은 제약 바이오 분야 기업공개(IPO) 활성화 방안이 빠진 점도 아쉽다고 밝혔다. 2005년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수익성은 낮지만 성장성이 큰 기업들이 상장할 수 있도록 상장 심사 기준을 낮춰주는 지원 제도) 도입 뒤 100곳 이상의 바이오 기업이 코스닥에 입성했다. 그러나 이후 흑자전환에 성공한 기업은 찾기 힘들고, 기술특례상장기업 중 바이오 기업의 비중도 크게 줄고 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