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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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 많고 교육열 높은 지역서 학교폭력 잦아 [송민섭의 통계로 본 교육]

서울 자치구별 학폭 심의 비교해보니

노원·은평·강서·송파·강남, 최다 발생
입시학원·특목·자사고 많이 몰려 있어
유형별로 보면 남녀공학 70.1% 높아

‘223건 대 40건’.

입시기관 종로학원이 2020∼2022년 3년간 서울 320개 고등학교에서 진행된 2112건의 학교폭력 심의를 자치구별로 비교한 결과입니다. 이 기간 223건의 학교폭력을 심의한 노원구가 25개 자치구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40건의 학교폭력심의위원회 개최에 그친 광진구는 가장 적었습니다.

학교폭력 심의 건수로 따졌을 때 상위 5개구는 노원구에 이어 은평구(149건), 강서구(136건), 송파구(128건), 강남구(112건)입니다. 상대적으로 입시 학원들이 몰려있고 소위 대입 명문고가 많은 자치구가 포진한 게 눈에 띕니다. 반면 하위 5개구는 광진구에 이어 금천구(43건), 영등포구(45건), 강북구(46건), 동작구(47건)였습니다. 대체로 교육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평가를 받는 곳들이네요.

이 같은 학폭 심의 건수를 관내 고교 수로 나눠보면 다른 순위가 나옵니다. 25개 고교가 있는 노원구는 학교당 8.9건의 학폭 심의를 연 셈이어서 이번에도 서울 자치구 중 가장 높았습니다. 다만 2∼4위는 서대문구(학교당 8.7건 심의), 은평구(8.3건), 서초구(8.2건), 성북구(7.8건)로 다소 순위에 변동이 있습니다. 학교당 학폭위 개최가 적은 자치구는 광진구(4.4건)에 이어 영등포구(5.0건), 강남구(5.1건), 중구·중랑구(각 5.2건) 등이었습니다.

 

고교 학폭 심의와 관련해 상위에 오른 자치구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에 따르면 △남녀공학 및 특성화고 비율이 높은 곳 △자치구 내 교육 격차가 존재하는 곳 △학부모 교육열이 높은 곳에서 학폭 심의가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지난해 열린 서울 고교 학폭 심의(622건)를 학교유형별로 살펴보면 남녀공학이 70.1%, 남고 21.1%, 여고 8.8%였습니다. 최근 3년간 상위 20위에 오른 고교 대부분이 남녀공학이었다고 합니다. 남녀공학의 경우 신체·언어·사이버폭력 등은 물론 성폭력 등 이성 간 발생할 수 있는 사안도 상당하다는 게 이 대표 설명입니다.

최근 3년간 2112건의 학폭 심의로 총 4206건의 1호(서면사과)∼9호(퇴학) 처분이 내려졌는데 전체 처벌 건수로는 일반고(59.0%), 특성화·마이스터고(34.9%), 특수목적·자율형사립고(6.1%) 순이었습니다. 하지만 학교당 처분 건수는 특성화고가 압도적입니다. 일반고(211개교) 1곳당 처분 건수는 11.8건, 특목·자사고(35개교)는 7.3건인 반면 특성화·마이스터고(74개교)는 19.8건에 달했습니다.

학부모의 교육열도 학폭 심의 및 처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특목·자사고의 높은 중대 처분율이 이를 방증합니다. 고교 유형별로 최근 3년간 학폭 심의에서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4호(사회봉사) 이상의 중대처분율을 살펴보면 특목·자사고가 38.1%로, 일반고(36.6%)보다 1.5%포인트 높습니다. 일반고 중에서 강남구 H고나 서초구 S고 등 대입 성적이 좋은 학교도 학폭 심의가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소위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몰려 있는 고교에서 중대 학폭 사건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임 대표는 “학폭 심의 건수나 처분 수위가 높은 지역·학교는 교육 및 입시에 대한 학부모 관심과 열의가 높아 학폭 사안이 터질 경우 가해자나 피해자 측 모두 적극적 자세를 취하는 편”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들이 학폭 가해자로서 2018년 학폭위에서 강제전학 처분을 받자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으로 1년여 시간을 끈 정순신 변호사가 떠오른 순간이었습니다.

정부가 최근 학생부 학폭 조치 기록의 보존 기간을 졸업 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이를 정시모집에도 반영하는 내용의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가해 학생에 대한 엄정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감 가는 부분이 있지만 유력층의 관련 소송이 더 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이번 대책이 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선도라는 법 취지와 맞지 않고 일부에게만 경각심을 갖게 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일각의 지적을 감안해 교육 당국이 이번에는 정책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운용의 묘를 발휘하기를 기원합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