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또다시 윤석열 거부권?… 간호법이 뭐길래 [미드나잇 이슈]

간호사에 대한 인식 변화·처우 개선 등이 갈등 핵심
국회서도 해법 못 찾아… 의장이 27일로 처리 미뤄
국회 통과돼도 尹 거부권 검토 예상… 악순환 반복

의협 등 반대 단체의 파업 예고… 의료 공백 우려도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과 국회 본회의 부결로 ‘뜨거운 감자’가 된 양곡관리법과 함께 주목받는 법이 있습니다. 바로 간호사단체와 의사단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간호법’입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간호협회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는 간호법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국내 보건의료 제도의 중심에는 의사와 의료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법 2조는 의사의 업무를 ‘의료와 보건지도’로,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의사를 병원에서 행하는 진료와 의료 행위의 주체로, 간호사는 이를 돕는 진료 보조자로 규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죠. 이 같은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으로 출발해 여러 차례 개정됐으나 기본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상정이 예정된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찬성과 반대하는 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뉴스1

그런데, 간호계는 1970년 초부터 간호 업무에 대한 법적 규제 개선을 요구해 왔습니다. 단순 진료 보조자가 아닌 간호라는 영역의 주체자로 인식해달라는 요구였죠.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간호법 갈등의 핵심도 이런 간호사에 대한 인식 변화와 처우 개선 등을 담고 있습니다. 간호사단체는 이번 간호법, 즉 의료법에서 분리되는 단독법안이 간호사들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역할을 새롭게 규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간호사들이 의사 없이 병원을 차릴 수 있는 ‘단독 개원’ 가능성을 두고 양 단체 간 첨예하게 입장이 나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간호법 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 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고 돼 있습니다. 의협 측은 ‘지역 사회 혜택’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는 점 등을 근거로 간호법 제정이 단독 개원으로 가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입장입니다. 반면 간호협회는 단독 개원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현행 의료법은 간호사가 의료기관을 열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죠. 상정된 간호법 31개 조항에서도 ‘단독 개원’이 가능하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이 밖에도 의협은 지금까지 여러 보건 의료 분야들이 유기적으로 협업할 때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었는데, 특정 직역(간호사) 이익만 대변하는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그런 협업 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간협은 건강의 패러다임이 병원, 그리고 치료 중심에서 지역, 예방·관리로 바뀌고, 간호 서비스 영역이 병원을 벗어나 노인요양원·보건소·학교·사업장 등으로 확대됨에 따라 간호사들을 위한 법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간호법 통과를 바라는 간협 측은 간호법을 ‘부모 돌봄법’에 비유합니다. 초고령사회가 임박한 상황에서 사회적 돌봄에 대한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고 의료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것이죠.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 인력을 지역 사회에 적절히 배치하고 장기근속을 유도하면 고령층 돌봄 등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런 간호법 개정안으로 직간접적 영향을 받을 의료인들은 2021년 기준 간호사 45만7849명, 간호조무사는 8만1048명, 의사 6만1749명 등 60만명에 달합니다.

 

문제는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야 할 이런 갈등이 토론의 장인 국회에서조차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민주당은 지난 13일 간호사법 제정안 처리를 요구했지만, 김진표 국회의장은 “여야 간 추가 논의를 거쳐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달라”며 27일 본회의로 법안 처리를 미룬 상태입니다. 여당이 뒤늦게 내놓은 중재안도 민주당과 간호협회는 “간호사 업무를 독립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간호사 처우 개선에 그친 법”이라고 반발하고 있죠. 대선 때 간호사법 제정에 찬성했던 윤석열 대통령도 여당이 반대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양곡관리법에 이어 본회의 직회부와 대통령의 거부, 여야 충돌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셈입니다.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의 상정이 보류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항의하며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의협을 비롯한 간호법 반대 단체들이 파업 투쟁까지 예고하며 의료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간호법 저지 13개 단체 보건복지의료연대(보건복지의료연대)’는 지난 8일 총파업을 결의했습니다.

 

의사윤리강령 1호는 의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며, 의료를 적정하고 공정하게 시행하여 인류의 건강을 보호 증진함에 헌신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2006년 제정된 한국 간호사 윤리선언은 ‘우리 간호사는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인권을 지킴으로써 국가와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숭고한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의료인으로서 국민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 두 직업이 가진 공통된 사명일 것입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