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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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대피소 ‘방’… 그곳에서 10여년을 보냈다 [2023 대한민국 孤 리포트]

<3부> 고령사회 ‘8050 리스크’
(상) 은둔생활 늪에 빠진 청·중장년

자립 못해 부모에 의존 생활
은둔 청년 24만4000명 추정
어느덧 중장년 돼 고립 심화

방에 틀어박혀 용돈 받아 생활… 부모 사망 땐 범죄 ‘무방비’
은둔 중년 “난 그냥 존재만 하는 사람”
경제·정신적으로 기댈 곳은 부모님뿐
벗어나려 해봐도 중년 접어들어 좌절

어머니와 둘이 지내던 40대 캥거루족
부모 죽자 시신 방치한 채 연금 수령
전문가 “은둔 중년 발견·지원책 필요”

어려서부터 이효진(42·가명)씨에게 방은 가장 ‘안전한’ 공간이었다. 아버지와 오빠의 지속적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잠시나마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대피소였다. 그 방에서 효진씨는 15년간 은둔생활을 했다.

 

효진씨가 기억하는 첫 폭행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오빠가 효진씨 목에 칼을 들이민 것이다. 그날부터 오빠가 결혼해 분가한 날까지 약 20년간 효진씨는 수시로 맞았다. 효진씨 오빠는 “기분이 나쁘다”며 주먹을 휘둘렀다. 중학교 2학년 때 효진씨는 TV로 야구 경기를 보고있던 오빠에게 “가요 프로그램을 보고싶다”고 말했다가 눈 밑 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기도 했다.

 

효진씨는 도움을 청할 데가 없었다. 오빠는 “엄마,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를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효진씨가 어머니를 가장 의지하는 걸 알고 하는 말이었다. 오빠의 폭력성을 누구보다 잘 알던 효진씨에게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오빠는 정말 엄마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같이 효진씨가 할 수 있는 건 오후 6시가 되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적어도 어머니가 퇴근해 집에 있을 땐 오빠가 때리지 않았다. “눈물자국 있으면 혼난다”는 오빠의 협박에 매번 터져 나오는 눈물을 꾹 눌러 삼키며 효진씨는 방에서 엄마가 퇴근하기만 하염없이 기다렸다.

 

“오빠는 아빠한테 맞은 스트레스를 저한테 풀었던 것 같아요.” 효진씨는 오빠의 폭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효진씨 아버지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항상 집에 있었다.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었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 보일 때면 폭력을 행사했다. 그 폭력은 아들에게는 주먹으로, 딸에게는 말로 행해졌다.

 

욕설이 난무하는 폭언은 효진씨뿐 아니라 효진씨 어머니를 향해서도 이어졌다. 효진씨를 향해 “그러니까 니가 이 모양인 거야”라고 고성을 치다가 효진씨 어머니를 향해 “니가 가정교육을 못 시켜서 애가 이 모양인 거야”로 끝나는 식이었다. 아버지의 고성이 시작될 때면 효진씨는 방으로 숨었다. 아버지의 폭언이 듣기 싫었고, 그 말을 듣고만 있는 어머니가 안타까웠다. 매번 반복되는 상황에 “내가 안 보이면 부모님이 싸우는 일도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굳어져갔고, 그럴수록 더 굳게 방문을 닫았다.

 

효진씨가 방에 완전히 숨어든 건 27살 때다. 24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자, 집밖에 나가야 하는 이유가 사라졌다. 당시 효진씨는 “무조건 대기업에 가거나 공무원이 돼야 한다”는 아버지의 염원을 따라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금방 합격할 줄 알았던 시험에서 계속 낙방했고, 방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은 길어졌다. 27살 때부터는 먼저 취직한 친구들 앞에 성공해서 나타나겠다고 다짐하며 친구들이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효진씨는 지난해까지 약 15년이라는 세월을 그의 방에서 보냈다. 그동안 효진씨가 집 밖을 나선 건 일주일에 10∼30분, 1년으로 치면 24시간이 될까 말까 했다.

◆안전한 ‘진공상태’의 방

 

효진씨에게 세상은 방 안과 방 밖으로 나뉘었다. 가장 편안해야 하는 ‘집’도 효진씨에겐 언제, 어떤 방식으로 폭력이 날아올지 몰라 ‘불안한’ 곳이었다. 집 밖은 ‘불편한’ 곳이었다. 집에서 나갈 때면 거실에 있는 아버지가 “어디 가냐”고 따져 물었고, 귀가가 늦은 날에는 “뭐하고 돌아다니다 이제 들어오냐”며 또다시 폭언을 쏟아냈다. 아버지가 “나가서 운동이라도 하고 와”라고 말할 때면 억지로 집 밖에 나가기도 했지만, 효진씨가 갈 만한 곳은 없었다. 동네를 한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갈 뿐이었다. 공무원시험에서 여러번 떨어진 뒤로는 “직업 없는 젊은 사람이 낮에 돌아다니면 이상하게 보려나”라는 걱정이 들어 더욱 집 밖에 나가기 싫어졌다.

 

방 안은 달랐다. 효진씨는 방 안을 ‘진공상태’라고 표현했다. 16일 세계일보 취재진에게 그는 “썩지도 않고 부패되지도 않는, 외부로부터 상처받지 않도록 나를 안전하게 숨기는 공간”이라고 자신의 방을 소개했다.

 

방 안에서 효진씨는 공상을 했다. 공상을 하면 그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예쁘고 똑똑하고 일도 잘 하는, 인기 많은 완벽한 여성. 효진씨는 “현실의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현실을 보지 않기 위해 더 공상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현실이 비참하게 느껴질수록 공상 속의 자신이 간절해졌고, 더 깊은 공상에 빠져들었다.

 

그럴수록 현실과는 더 멀어졌다. 현실 속 자신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해야 할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루종일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책을 펴고 공부를 하려고 해도 글자만 보일 뿐, 글이 의미하는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과 밤에 잠 드는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하고 졸리면 잤다. 효진씨는 “저는 그냥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냥 존재만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공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효진씨는 항상 괴로웠다. “어떻게 살아야하지” “뭘 해야하지” “새로 태어나고 싶다” 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털어놓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머릿속은 언제나 복잡하기만 했다. 효진씨는 “생각이 너무 많아지니까 머리를 열어서 뇌를 깨끗하게 씻고 싶었다”고 했다.

◆벗어날 수 없어 부모에 의존

 

효진씨도 은둔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다. 2020년 효진씨는 끝내 공무원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효진씨는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저는 알잖아요. ‘직업이 수험생’인 건 안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뒤적였다”고 했다.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40세 가까이 된 그가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었고, 그마저 “이력서를 가져오라”는 말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력서에 쓸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전이 또 좌절되자 효진씨는 다시 방으로 숨었다. 효진씨는 “은둔하는 사람들은 상처에 취약한 사람들 같다”며 “에너지가 올라와서 밖에 나갔다가도 상처를 받고 다시 숨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 효진씨에게 어머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효진씨는 어머니에게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효진씨는 어머니가 주는 한 달 용돈 10만원으로 생활했다. 부모님 집에 살면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기에 가능한 생활이었다. 어머니는 그가 정신적으로 기댈 유일한 사람이었다. 효진씨는 어머니를 ‘내가 이렇게 늙어가도 나를 끝까지 잡아주고 지지해줄 사람’으로 생각했다.

 

◆자립하지 못해 범죄 휘말리기도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40대의 효진씨처럼 ‘은둔 청년’에서 ‘은둔 중장년’으로 넘어가는 이들이 적잖다. 16일 국무조정실의 ‘2022년 청년 삶 실태조사’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는 약 24만4000명에 달하는 ‘은둔 청년(20∼30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이 향후 은둔 중장년(40∼50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은둔 중장년의 특징은 70∼80대 고령의 부모가 자녀를 부양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경제능력을 잃거나 사망할 경우 은둔 중장년의 삶 또한 같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보다 앞서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문제를 경험한 일본에서는 이를 70대 부모가 40대 은둔 자녀를 부양하는 ‘7040 문제’ 혹은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8050 문제’라고 부른다.

 

자립할 준비가 되지 않은 은둔 중년은 자신을 돌봐주던 부모가 갑작스럽게 사망할 경우, 비극적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지난 14일 인천지법 형사14단독 이은주 판사는 약 2년5개월간 사망한 모친의 사체를 집에 방치한 채 모친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부당 수령한 신주연(48·가명)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119 구조대가 강제로 출입문을 개방해 들어갔을 때 비로소 피해자 사체가 발견됐으며, 발견된 사체는 백골이 참혹한 모습이었다”며 신씨 죄를 엄중히 물었다. 다만 이 판사는 신씨가 그동안 어머니를 정성으로 부양해왔고, 어머니의 직후 도움을 구하기 위해 언니들에게 전화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으며, 어머니 사망 후 자포자기한 상태로 바깥생활을 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는 점을 참작해 선고를 결정했다.

 

신씨는 은둔 청년에서 은둔 중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신씨는 18살에 독립해 10념 넘게 여러 공장에서 일하다가 2006년부터 은둔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부터는 어머니와 둘이 살기 시작하며 당뇨가 있는 어머니를 정기적으로 병원에 모시고 가기도 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어떤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는 어떤지, 어머니가 먹은 음식은 무엇인지 메모하며 극진히 보살핀 흔적도 남아있다. 하지만 어머니가 사망한 뒤로는 마트와 은행 외에는 집 밖을 나서지 않으며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했다. 어머니의 연금 중 대출이자와 공과금을 제외한 돈으로 라면을 사서 끼니를 떼운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집에서는 ‘나도 이러다 언젠가 발견되겠지’라는 메모가 발견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은둔청년의 은둔생활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한편 은둔 중장년을 신규 발굴하고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는 “은둔 청년을 방치하면 은둔 중장년이 나올 것”이라면서 “경제적 활동을 못하는 이들을 부모가 부양하는 상태가 20∼30년 동안 지속되면 양측 모두 황폐화된다”고 우려했다.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씨즈 관계자는 “중년이 되어 은둔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재 서울시 조례에 따라 ‘은둔 청년’의 범위가 39세까지로 제한돼 은둔 중장년을 직접 지원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라며 은둔 중장년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