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021년 전당대회 당시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 대국민 사과와 검찰 수사를 공개 요청한 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에 미칠 파장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녹취 등 상세한 정황이 이미 공개된 터라 야당 탄압이라는 주장만 고집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것이다.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17일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소속 의원 압수수색 닷새 만에 사과의 뜻을 밝힌 데 대해 “(핵심 인물인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이) 구속 상태이기 때문에 당 입장에서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어 내용을 비공식으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결국 당 지도부가 돈 봉투 의혹이 어느 정도 실체적 진실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다.
비명(비이재명)계 의원들 또한 공개적으로 당의 강경한 조치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상민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에서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정말 쓰레기 같은, 아주 시궁창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냄새나는 고약한 일이 벌어졌다”며 “(당 지도부는) 단호하고 가차 없이 내부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원욱 의원도 BBS라디오에서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완벽히 잃어버릴 수 있는 사건이다. 정말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자체 진상 조사를 벌이는 안도 검토했지만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검찰이 이미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이라 당 진상 조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이 대표가 검찰에 직접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공개 요청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권 대변인은 “자체 조사가 여러 상황이나 여건상 여의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실효성 있는 조사가 가능하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사건의 성격상 (규명을 위해선) 수사권이 반드시 필요한 내용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득실을 따져봐도 자체 진상 조사가 악수가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있었다. 당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가 나중에 검찰 수사 결과와 다를 경우 또 한 번 당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당대표 본인이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데 자체 진상 조사로 징계라도 할 경우 대표에 대한 자격 시비가 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이날 송영길 전 대표 조기 귀국 요청 사실을 밝힌 것도 돈 봉투 의혹의 불똥이 이 대표 본인에게 튀는 걸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란 평가가 나온다. 2021년 전당대회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 측이 송영길 캠프를 후방 지원했다는 소문까지 최근 부각되고 있다. 이 대표가 지난해 대선 패배 후 송 전 대표의 지역구였던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사실도 당 안팎에서 입길에 오르내리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이 대표와 송 전 대표의 이 연결고리에 대해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 김기현 대표는 “이 대표는 송 전 대표에게 진빚이 없다면 관련자에 대해 철저한 수사 협조를 촉구해야 마땅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이 대표를 대선 후보로 선출했던 전당대회에서도 돈 봉투가 오갔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이라고 자인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수진 최고위원도 “2021년 ‘쩐당대회’ 당시 송 대표는 이재명계 지원을 받았고, 이 대표의 대선 패배 이후 송 전 대표는 5번이나 당선된 자신의 지역을 내줬기에 이번 사태는 이 대표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며 이를 “전·현직 더블리스크”라고 주장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최고위 회의 후 “국회 법사위 긴급현안질의를 민주당에 요구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질의하고 당사에 돈 봉투 제보센터를 설치해서 양심 있는 민주당 내 인사나 관련자들의 ‘더불어돈봉투’ 관련 제보를 적극 수집해 국민께 알릴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