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로 끝난 미국 대선에서 개표기 조작 가능성을 보도한 폭스사가 투·개표기 제조업체에 1조원 넘게 돈을 물어주게 됐다. 언론·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수정헌법 1조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미국에서 이처럼 거액의 배상이 나온 건 이례적이다. 표현의 자유엔 한계가 있으며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가짜뉴스에는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팩트체크도 없이 대선 투표조작의혹을 보도한 폭스사의 자업자득이다. 폭스는 “투·개표기 제조업체 도미니언보팅시스템이 투표결과를 조작했을 수 있다”, “표를 뒤집거나 존재하지 않는 표를 추가하는 사기가 발생했다”고 수차례 보도했다. 이에 도미니언은 명예훼손 혐의로 16억달러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양측은 폭스가 7억8750만달러(약 1조391억원)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지난해 폭스 매출의 5에 달하는 거액으로 미 역사상 언론사가 명예훼손 소송으로 지급한 합의금 중 가장 큰 금액이다. 폭스의 보도 이후 대선 결과에 불복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층 사이에 음모론이 퍼졌고 급기야 사상 초유의 국회의사당 난입사건으로 이어졌다.
가짜뉴스와 괴담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사흘이 멀다 하고 ‘천공 국정개입설’이나 ‘청담동 술자리 사건’, ‘일광 횟집 친일소동’처럼 악의가 가득한 루머와 거짓말이 판을 친다. 허위사실이 드러나도 외려 큰소리를 치고 돈벌이에 악용한다. 정당과 정치인도 정파 이익과 진영논리에 기대, 루머와 가짜뉴스를 퍼 나르고 표현의 자유와 면책특권 뒤에 숨는 일이 허다하다. 허위사실 유포로 유죄선고를 받은 인사를 공정성과 공익성이 생명인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추천하는 야당의 행태에는 말문이 막힌다. 오죽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4·19혁명 기념사에서 “지금 세계는 허위 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고 했을까.
가짜뉴스는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혼란을 키운다. 공론의 장을 왜곡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가짜뉴스를 마약만큼 중대한 사회병리로 대응해야 할 때다. 가짜뉴스와 괴담 생산·유포자에 대해 엄중히 법적,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피해자를 보호·구제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
[사설] 가짜뉴스 美 폭스사 1조원 배상, 남의 나라 일 아니다
기사입력 2023-04-21 00:58:29
기사수정 2023-04-21 00:58:28
기사수정 2023-04-21 00: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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