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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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세사기 피해확인서 안 떼줘 주거금융 지원 못 받는다니

지원센터, 문턱 높아 2.6%만 발급
경매우선매수권·저리 대출 등 봇물
사태 발생 후 ‘뒷북 수습’ 언제까지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대책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어제 당정협의회를 열어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에게 주택 경매 때 우선매수권을 주고 저리 대출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직적 전세사기에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공범의 재산을 추적하고 범죄 수익을 전액 몰수 보전 조치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금껏 피해자들이 줄곧 요구한 내용으로, 뒤늦었지만 당연히 취했어야 할 조치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중단 방안 시행을 지시한 이후 당정은 물론이고 금융권까지 발빠른 부응에 나선 모양새다. 농협은 경매유예 등 지원에 나섰고 우리금융그룹은 피해자에 대한 전세대출·구입자금대출·경락자금대출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금융당국도 피해자들에 한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같은 대출 규제를 예외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20·30대 젊은 피해자들이 잇달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이런 대책들이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세사기는 허술한 제도와 느슨한 감독 속에 사기꾼과 건설업자, 부동산중개업자, 감정평가사가 한통속이 돼 저지른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재난에 가깝다. 그럼에도 피해자 구제는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경매 중단이나 우선매수권 부여 등 조치는 선의의 저당권자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거나 국회가 특별법을 마련해 풀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 대책이 뒤늦었을지라도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데 피해자들이 피해 회복을 위해 처음으로 찾는 전세피해지원센터 문턱부터 너무 높다. 세계일보 취재 결과 서울과 인천의 피해지원센터의 피해확인서 발급률은 2.6%에 그쳤다. 경기와 부산 센터나 이달 초 서비스에 나선 전국 17개 광역시청과 도청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셋집이 경매에 부쳐져 낙찰되는 등의 위기 상황이라야 발급된다고 한다. 피해확인서를 받아야 저리 대출과 긴급주거지원 등을 받는데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 수혜자가 적다.

이번 사태는 피해자 사정을 듣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벼랑 끝에 선 피해자에게만 확인서를 제공하는 기준은 자칫 젊은이들의 잇단 죽음 이후에 대책을 마련하는 것처럼 너무 늦은 것일 수 있다. 문제가 터진 뒤 부랴부랴 수습하는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