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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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고용 불안·업무 과중… 구멍 난 ‘정신건강센터’ [심층기획-국민정신건강 관리망 흔들]

매년 500명 이탈자 발생 ‘인력난’
국민 정신건강 관리망 부실 우려

정신건강복지센터마다 이직 잦아
제주선 1명이 환자 45명 담당도
업무량 많아 제대로 된 상담 불가

센터에 심리상담사 배치 규정 없어
담당자 자주 교체돼 환자들도 고통
“이태원 참사 계기 장기 정책 필요”

시민의 정신 질환 예방과 치료 연계 등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인력난으로 제 역할에 한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계약 기간 만료를 이유로 해고가 빈발하면서 전국에 분포한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한 해 500명에 가까운 이탈자가 발생하고 있다. 구와 시·도 단위에 걸쳐 서민을 위한 무료 상담과 재활 치료 등을 담당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서 고용 불안과 과중한 업무로 스스로 이직을 선택한다는 자조적 목소리가 나온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발생하는 인력 이탈이 국민 정신 건강 관리망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4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동안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배치된 지 3년 이내 퇴직한 이는 495명에 달했다. 3년 이내 퇴직자 수는 2018년 204명, 2019년 267명, 2020년 388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가정신건강현황조사’를 보면, 입사자 5명 중 1명꼴로 3년 이내에 퇴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8∼2021년 입사자 중 3년 이내 퇴직자는 1220명이었는데 이는 같은 기간 입사한 이의 22.5%였다. 해당 통계에는 지난해 이후 퇴사자가 포함되지 않아 실제 퇴직자 비율은 이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상담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매번 울면서 같은 얘기를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 폭력적이고 힘듭니다.”

 

2021년 10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임유신(62)씨는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조금이나마 치유하기 위해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았지만 임씨의 아픔을 오히려 헤집고 있다. 임씨는 “(센터에서) 제발 같은 선생님과 안정적으로 상담받고 싶다”면서 “하루빨리 이 아픔을 벗어나고 싶은 바람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천안시 서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서북구 센터)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임씨는 유족 11명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이 같은 토로에는 이유가 있었다.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던 서북구 센터는 지난해 10월27일 센터장이 위탁을 중도 철회하며 보건소 직영 체제로 전환됐고, 지난달 2일부터 천안시 서북구 보건소가 운영하고 있다. 유족들에 따르면 전환 과정에서 센터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됐고 기존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서북구 센터 11명이 해고됐기 때문이다.

 

서북구 센터를 운영한 서북구 보건소는 무기계약직을 제외한 기간제 직원 전원을 해고한 이유로 근로계약 기간 만료를 들었다. 보건복지부 지침은 ‘직영 체제로 전환 시 기존 인력의 80% 이상 계속 고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권고 사항일 뿐이다. 손세미 보건의료노조 서북구정신건강복지센터 분회장은 “보건소 측은 예산이 없어서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지난 간담회에서 만난 복지부 관계자는 11명을 계속 고용할 수 있는 예산을 내려보냈다고 했다”며 “누구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해고 이후 두 달 동안 업무가 중단됐다”며 “최근에 가족을 떠나보낸 한 분은 단 한 차례 지원도 아직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안타까워했다. 손 분회장은 “11명의 집단 해고 이후 과중해진 업무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하고 1명이 자진 퇴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사람이 갈려 나간다”… 1인당 등록 정신질환자 수 26.6명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이탈 문제의 배경에는 고용 불안뿐 아니라 업무 과중도 작용한다. 서울의 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임상심리사로 근무했던 이현주(가명·46)씨는 이에 대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사람이 갈려 나간다”고 표현했다. 그는 “직원 1명이 관리하는 사람 수가 많다 보니 상담이라는 게 불가능하다”며 “직원이 소진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토로했다.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포함한 지역 사회 재활 기관에 근무하는 사례관리자 1명이 관리하는 등록 정신질환자 수는 전국 평균 26.6명이다. 가장 많은 질환자를 관리하는 지역은 제주도로, 1인당 45.1명을 관리한다.

 

이씨는 응급 출동의 위험성도 지적했다. 일례로 극단적 선택 시도 접수가 들어오면 관할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이 극단적 선택 시도자를 3일 이내 방문해야 한다. 이씨는 한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학생의 집을 방문했다가 학생이 던진 물건에 맞을 뻔한 뒤 응급 출동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한번은 조현병 환자 집에 방문했다가 환자가 휘두른 가위에 그여서 돌아온 동료를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2017년에 입사한 이씨는 결국 2019년 퇴사했다.

 

특히 정신건강복지센터에는 전문 상담이 가능한 심리상담사가 부재한 경우도 많다. 이지은 한국상담심리학회 상담심리사지원위원장은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전화 상담 자원 봉사를 했는데, 지속적으로 상담이 필요하면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락하라고 안내했다”며 “그러나 정작 정신건강복지센터에는 상담심리사가 거의 없고 사회복지사와 간호사, 임상심리사만 있는 경우가 적잖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위기 관리는 이뤄지겠지만 전문적인 심리상담 제공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씁쓸해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대한 심리상담사 배치 규정이 전무하다 보니, 수요가 있어도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공립 기관 등에서 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연합뉴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고유 역할 정립 필요”

 

인력 이탈 현상은 곧 시민들의 정신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지역 사회 내 소외계층에게 치명적이다. 임명호 단국대 교수(심리학과)는 “정신 건강 문제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인력 누수가 발생하면, 국가적인 차원에서 볼 때 비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무료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정신과 병원이나 사설 상담 센터에 갈 여력이 없는 소외계층의 정신 건강은 관리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인건비 문제를 인력 이탈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사람을 뽑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뽑는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1인당 배정된 인건비는 2018년 3400만원, 2019년 3500만원, 2020년 3598만원, 2021년 3632만원, 2022년 3682만원으로 해마다 증가했지만 물가상승률에 비춰보면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해우 서울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 이사)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역할을 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 센터장은 “이태원 사고를 계기로 올해부터 재난심리지원사업도 정신건강복지센터 업무로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며 “몇 년 사이에 많은 업무가 센터로 깔때기처럼 밀려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센터에 요구하는 기대치도 커지는 현상은 바람직하다”면서도 “다만 기대치가 커지는 만큼 투자와 정책도 따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게 근무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