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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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증권發 주가 폭락 사태의 전말 [미드나잇 이슈]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주식 폭락이 4일 연속 이어졌다. SG증권은 1983년 은행업무 개시를 통해 우리나라에 진출한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이 2013년 설립한 국내법인. 표면상으로는 SG증권이 대량매도를 하면서 주가가 떨어진 것이지만, 그 이면에 주가조작 세력의 조직적 움직임이 있었던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주가조작 세력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출국금지 조치했고, 금융당국은 27일 압수수색을 시작하며 수사에 착수했다.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SG증권발 폭락사태는 어떻게 촉발된 것이고,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코스피가 전 거래일(2484.83)보다 0.52포인트(0.02%) 내린 2484.31에 개장한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SG증권 대량 매도 원인은 ‘CFD’

 

사건이 터진 건 지난 24일. 이날 코스피 상장사 5곳(삼천리·대성홀딩스·서울가스·세방·다올투자증권)과 코스닥 상장사 3곳(하림지주·다우데이타·선광)이 하한가로 거래를 마감했다. 문제의 8개 종목은 장 시작부터 하락하다 오전 9시 30분을 전후로 일제히 하한가로 직행했다.

 

알고 보니 8개 종목은 SG증권 창구에서 매도 물량이 대량으로 쏟아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SG증권은 하루 동안 하림지주 191만2287주, 다올투자증권 61만6762주, 다우데이타 33만8115주, 세방 12만1925주, 삼천리 1만3691주, 대성홀딩스 1만1909주, 서울가스 7639주, 선광 4298주를 매도했다.

 

SG증권은 왜 이렇게 많은 물량을 하루 만에 쏟아낸 걸까. 그 배경엔 차액결제거래, 즉 CFD(Contract For Difference)가 있다. 일반에겐 생소한 CFD는 고객이 기초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가격 변동분에 대해서만 차액을 결제하는 총수익스와프(TRS)의 한 종류다. 증거금 40%만 있으면 2.5배까지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 100만원어치 주식을 사려면 40만원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SG증권은 국내 주요 증권사들과 CFD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FD는 위험성이 크지만 투자 주체가 노출되지 않아 고액자산가들이 주로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CFD는 차입 거래인만큼 상환시기가 되면 상환을 하거나 만기를 연장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보유 주식에 대한 반대매매가 이뤄진다. 이때까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특정 집단이 CFD를 통해 레버리지를 일으켜 주식거래를 대량으로 했고, 이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 상환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증권사가 대량으로 매도에 나섰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27일 서울 강남구 'SG증권발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받는 사무실에 적막이 흐르고 있다. 가수 임창정을 비롯해 약 1500명의 투자자들이 피해를 본 이 사건은 투자자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주식을 사고 팔며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금융당국은 해당 사무실과 관계자들 명의로 된 업체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뉴스1

◆통정매매로 3년간 천천히 주가 끌어올려

 

의문의 1차 초점은 ‘특정 집단은 누구인가’에 모아진다. 8개 종목을 뒤흔든 ‘주가조작단’이 있었단 의혹이 짙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주가조작 일당은 3년 전인 2020년부터 8개 종목의 주가를 천천히 올린 것으로 보인다. 일당들은 재력이 있는 전문직, 연예인 등에게 접근해 수익을 내주겠다며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을 통해 상당한 자금을 확보한 이들은 통정매매 수법과 CFD를 활용했다. 통정매매는 상대방과 미리 가격과 수량을 정해놓고 주식을 사고파는 수법으로,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추거나 띄울 때 사용된다. CFD는 앞서 말했듯 2.5배까지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는 투자 방법이다. 통정매매를 통해 주가를 띄울 때 CFD를 활용해 본인들 이익을 극대화한 것이다.

 

일당들은 자신들에게 투자를 일임한 투자자들 명의로 개통한 휴대폰을 활용했다. 이는 거래위치 추적 등 금융당국 의심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에게 투자한 투자자는 수백명 규모로,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그럼 왜 하필 지난 24일 사건이 발생한 것일까. 내부 관계자 중 누군가가 언론 취재와 금융당국 조사 사실을 알게 되자 의심을 피하고 투자 손실 위기에서 먼저 벗어나기 위해 주식을 매도하면서 발생한 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사건에선 가수 임창정씨도 투자자로 등장한다. 임씨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30억원을 투자한 사실을 알렸다. 임씨는 지난 26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어제 보니 두 계좌 모두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이틀 전에는 20억이었는데 1억8900만원만 남았다”며 “빚이 이제 한 60억이 생겼다”고 토로했다.

 

임씨는 현재 본인도 주가조작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임씨가 단순한 피해자인지 아니면 이들의 행위에 가담한 정황이 있는지는 추후 금융당국 조사를 통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통주식수 낮은 종목이 ‘타깃’

 

주가조작단은 왜 8개 종목을 ‘범행대상’으로 골랐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주가조작을 하려면 ‘조작’이 쉬워야 한다. 조작이 쉬우려면 주식 수가 적어야 한다.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100주인 회사 주가를 조작하는 게 유통주식 수가 1만주인 회사 주가를 조작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8종목의 평균 유동주식 비율은 40.55%다.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모든 상장사의 유동비율이 57.44%인 것을 감안하면 꽤 낮은 셈이다.

 

개별 기업별로 보면, 선광의 유동주식 비율은 38.3%, 대성홀딩스는 27.2%, 서울가스는 24.1% 수준이다. 삼천리도 45.3%로 50%를 넘지 않고, 다우데이타도 32.9%였다. 하림지주도 35%에 머문다. 세방의 경우는 50.5%로 절반을 겨우 넘겼다. 다올투자증권은 유일하게 유동주식 비율이 71%로 평균을 넘는다.

 

빚을 내 투자하는 신용거래 비중이 높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이들의 신용융자 잔고비율을 살펴보면 지난 25일 기준 선광은 12.3%, 대성홀딩스 6.71%, 서울가스 7.6%, 삼천리 10.4%, 세방 12.7%, 다우데이타 11.2% 수준이다. 대부분이 10%를 초과한다. 하림지주와 다올투자증권도 각각 7.6%, 14.8% 수준이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사태가 발생하기 전 코스피 전체 종목의 5일(17∼21일) 평균 신용융자 잔고율은 0.98%다.

27일 서울 강남구 'SG증권발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받는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마친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압수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뉴스1

◆하락세 언제까지…한동안 이어질 수도

 

8종목 중 4종목은 이날도 폭락했다. 삼천리가 –22% 수준이었고, 대성홀딩스와 서울가스, 선광은 이날도 하한가를 쳤다. 4거래일 연속이다.

 

언제쯤 안정세를 찾을 수 있을까. 한동안은 이런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주가조작 일당이 3년간 통정매매로 물량을 쌓아온 만큼 매도 물량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전날 대성홀딩스의 매도 잔량은 189만8345주나 된다. 전날 하루 거래량이 5만8477주인 걸 감안하면 하루 거래량의 30배 가까운 물량이 매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선광과 서울가스, 대성홀딩스도 비슷한 상황이다.

 

한편 금융당국은 강제조사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총괄과는 이날 주가조작 일당으로 지목된 H투자컨설팅업체 사무실과 관계자 명의 업체,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금융위는 압수수색을 통해 자료를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관계자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