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저보다 백악관을 먼저 갔지만, 여기 미 의회에는 다행히 제가 먼저 왔습니다(BTS beat me to the White House. But I beat them to Capitol Hill)”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일곱 번째로 27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연설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상·하원 의원 500여명 앞에서 이처럼 말하자 현장에서는 웃음과 함께 커다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앞서 배포된 연설문에는 없었던 대목으로 자칫 무거울 수 있었던 분위기를 확 끌어올린 윤 대통령의 애드리브였다. 윤 대통령은 “제 이름은 모르셨어도 BTS와 블랙핑크는 알고 계셨을 것(And even if you didn't know my name, you may know BTS and BLACKPINK)”이라고 말한 후 이러한 농담을 더해 의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윤 대통령은 “탑건·어벤저스와 같은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에서 사랑을 받았다”며 “저 또한 탑건 매버릭과 미션 임파서블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미션 임파서블 언급도 당초 원고에는 없었던 내용이다.
이날 43분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영어 연설에서는 의원들의 기립박수 23회를 포함해 총 56회의 박수가 나왔다. 일부 의원은 기립박수 중 윤 대통령을 향해 환호하기도 했다. ‘국빈’으로 방문한 윤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들어설 때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당연직 상원의장인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연단에서 의사봉을 두드릴 때까지 4분간 기립박수를 보내며 예우를 표했다.
윤 대통령의 연설은 “자유 속에 잉태된 나라,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에 의해 세워진 나라”라며 “저는 지금 자유에 대한 확신, 동맹에 대한 신뢰, 새로운 미래를 열고자 하는 결의를 갖고 미국 국민 앞에 서 있다”는 말로 시작됐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함께 세계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확장하는 ‘자유의 나침반’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윤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자유를 통한 동맹이 70년간 이어지는 동안 이와 정반대의 길을 고집하는 세력”이 있다며 “바로 북한”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올바른 길로 다시 나오기를 촉구한 뒤에는 “한미 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윤 대통령은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리에 모인 의원들에게도 “북한 주민들의 열악한 인권이 개선될 수 있도록 함께 힘써주시길 바란다”고 메시지를 건넸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이름도 올랐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경제성장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1960년대 초반 박정희 대통령은 현명하게도 케네디 행정부가 권고한 로스토우 교수의 경제성장 모델을 받아들여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신흥 산업 국가의 기반을 마련했다”며 말했고, 연설 말미에는 34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은 ‘미국에게 태평양은 더욱 중요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은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더욱 기여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언젠가 한국의 대통령이 다시 이 자리에 서서 오늘 내가 한 이야기가 내일의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할 날이 올 것입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1989년 연설을 다시 언급했다.
그러면서 “노태우 대통령의 꿈은 이미 현실이 됐다”며 “우리는 지금 인도-태평양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포용, 신뢰, 호혜의 원칙에 따라 ‘자유롭게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故) 윌리엄 웨버 대령을 비롯해 한미동맹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영웅들도 연설에 두루 등장했다. 웨버 대령은 70주년을 맞이한 한미 동맹의 상징적 인물이다. 한국전쟁 당시 작전 장교(대위)로 참전해 1951년 2월 원주 북쪽 324고지에서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잃었다. 전역 후에도 한국전 참전비 건립을 위해 헌신했다.
윤 대통령이 “오늘 이 자리에 웨버 대령의 손녀 데인 웨버씨를 모셨습니다. 어디 계신 지 일어나주시겠습니까?”라며 말하자, 의원들이 일어나 웨버씨를 향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웨버씨는 웃으며 화답했고,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김건희 여사도 함께 박수를 보냈다.
앤디 김(민주·뉴저지), 영 김(한국명 김영옥·공화·캘리포니아), 메릴린 스트릭랜드(한국명 순자·민주·워싱턴), 미셸 박 스틸(한국명 박은주·공화·캘리포니아) 의원 등을 향해 “세대를 이어온 한미 동맹의 증인”이라는 윤 대통령의 말에 의원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연설이 끝난 뒤에도 윤 대통령은 의원들과 악수하며 한동안 본회의장에 머물렀다. 연설문에 사인을 해주거나 의원들과 함께 ‘셀카’를 찍는 모습도 카메라에 포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