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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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챔피언된 스털링의 ‘진짜’ 챔피언 도전기 [찐팬의 UFC TALK]

2021년 3월6일, UFC 역사상 가장 불명예스러운(?) 챔피언 대관식이 펼쳐졌다. 이날은 UFC259가 열린 날로 UFC 밴텀급 챔피언 페트르 얀(30·러시아)이 도전자 알저메인 스털링(34·미국)을 맞이했다. 얀은 2018년 UFC에 입성한 후 7연승을 달리며 2020년 7월 챔피언에 올랐다. 얀은 직전 경기에서 UFC 페더급의 전설 조제 알도(37·브라질)를 5라운드 3분24초 만에 TKO로 잡아 주가가 한창 오른 상태였다. 단단한 가드와 탄탄한 복싱 실력을 갖춰 전성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알저메인 스털링이 2021년 3월6일 UFC259에서 페트르 얀에게 실격승을 하자 심판이 스털링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스털링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스털링은 이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기길 바란 게 아니었다”고 했다. BT Sports 캡처

도전자 스털링도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주짓수 블랙벨트에다 대학교 때 레슬링을 경험해 그라운드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난 선수다. 2014년 UFC에 입성해 이날 경기 전까지 UFC에서만 14경기를 치러 경험도 풍부했다.

 

하지만 경기 뚜껑을 열어보니 다소 일방적이었다. 스털링이 1라운드엔 테이크다운을 성공하며 분위기를 타나 싶었지만 얀에게 오른손 펀치를 맞은 뒤론 기세가 기울었다. 2라운드와 3라운드도 마찬가지였고,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 4라운드도 30여초가 남을 때까진 분위기가 비슷했다. 이대로라면 누가 봐도 얀이 이기는 경기였다.

 

그런데, 그때 일이 터졌다. 스털링이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있는 상황에서 얀이 스털링의 얼굴에 니킥을 날렸다. UFC는 무릎이 바닥에 닿아있는 상태에서 안면 니킥을 금지하고 있다. 선수 보호 차원이다.

 

니킥을 맞은 스털링은 그대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정신이 혼미한 듯 눈만 깜빡깜빡 거렸다.

 

명백한 반칙이었기에 UFC는 얀에게 반칙패를 줬고, 결국 스털링이 승리했다. 스털링은 그렇게 꿈이 그리던 챔피언 벨트를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감았다. 심판이 스털링의 승리를 선언하며 스털링 손을 올려줄 때 스털링의 억울한 표정은 압권이었다. 많은 UFC 팬들이 이 장면을 기억할 듯하다.

 

경기 후 UFC 팬 조롱이 쏟아졌다. 스털링이 잘못한 건 없었지만 경기가 기울었던 상황이었기에 팬들은 얀이 억울하게 타이틀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예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그땐 도전자가 경기를 속행한 것도 스털링에게 화살이 돼 돌아왔다. 2018년 3월 UFC235에서 당시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었던 존 존스(36·미국)가 경기를 잘 풀어나가다 도전자 앤서니 스미스(35·미국)에게 니킥을 날렸다. 이때 앤서니 스미스도 무릎이 바닥에 닿아있는 상태였다. 스미스가 경기를 포기하면 존스의 타이틀이 박탈될 상황이었지만 스미스는 경기를 속행하겠다고 했고, 결국 경기를 압도하고 있던 존스가 판정승하며 타이틀을 지켰다.

 

스털링은 그렇게 ‘비겁한’ 챔피언으로 낙인이 찍혔고, 1년1개월이 지나서야 그 오점을 뗄 기회를 맞이했다. 지난해 4월 처음으로 방어전을 치른 스털링의 상대는 또 얀. 도박사들은 얀의 승리를 예측했다. 배당률 차이가 꽤 났다. 1차전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털링의 마음은 꺾이지 않았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드디어 얀의 입을 조용히 할 수 있게 됐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실제 경기도 그랬다. 절치부심한 스털링은 얀을 레슬링으로 괴롭혔고, 결국 5라운드 판정승을 거뒀다.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승리였다.

 

그런 스털링이 오는 6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 푸르덴셜센터에서 열리는 UFC288에서 또 다른 도전자를 상대한다. 얀을 이긴 뒤 TJ딜라쇼(37·미국)라는 거물도 꺾은 터라, 이번 3차 방어전도 성공하면 이젠 누구도 스털링 업적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다. 아니, 지금껏 싸워왔던 상대들 중 가장 위협적이다.

 

상대는 UFC 플라이급과 밴텀급 두 체급을 동시에 석권했던 헨리 세후도(36·미국).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레슬링 남자 자유형 55kg급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UFC 남성부 중 가장 낮은 체급인 플라이급에서 활동을 시작한 세후도는 2018년 플라이급 타이틀을 땄다. 이후 플라이급 챔피언 벨트를 갖고 있는 상태로 밴텀급으로 월장, 2019년 밴텀급 챔피언 벨트까지 둘렀다. 2020년 5월 UFC249에서 도미닉 크루즈(38·미국)를 2라운드 TKO로 이긴 뒤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전성기 상황에서 ‘깜짝’ 발표였다.

 

그런 세후도가 돌아온다. 세후도는 지난해 1월 복귀를 공식화했다. 세후도는 밴텀급 타이틀을 되찾아온 뒤 한 체급 위인 페더급도 노린다는 계획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와 UFC 플라이급 챔피언, 밴텀급 챔피언 경력이 있는 세후도는 스스로를 ‘트리플 C’(세 번의 챔피언)라고 지칭한다. 여기에 페더급 챔피언 경력도 넣어 ‘C4’가 되겠다는 것이다.

 

세후도는 최근 메간 앤더슨과의 인터뷰에서 “스털링, 너의 시간이 끝나가고 있다”며 “스털링을 이긴 뒤 페더급 챔피언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를 쫓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나는 ‘트리플C’이고 이젠 ‘C4’를 노린다”고 덧붙였다.

 

둘의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배당률도 초근접이다. 사이트에 따라 세후도가 이긴다고 보는 곳도, 스털링이 이긴다고 보는 곳도 있지만 그 차이가 매우 근소하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을 명경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UFC288의 코메인 이벤트도 눈길을 끈다. 웰터급 랭킹 4위 벨랄 무하마드(35·미국)와 5위 길버트 번즈(37·브라질)의 대결이다. 무하마드는 2019년 4월 이후 8연승을 구가하고 있다. 눈 찌르기를 당해 무효 판정이 난 현 챔피언 리온 에드워즈(32·영국)와의 경기는 논외로 쳤을 때다. 8연승으로 타이틀샷 자격이 충분하지만 경기 스타일이 지루하고 스타성이 적어 아직 타이틀전을 치르진 못했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이기면 타이틀전이 확실시된다.

 

번즈에게도 이번 경기는 타이틀전이 걸린 일전이다. 번즈는 지난달 열린 UFC287에서 호르헤 마스비달(39·미국)을 꺾은지 한 달 만에 다시 경기를 가진다. 타이틀샷을 본인에게 달라는 일종의 무력시위다. 랭킹 4위 무하마드를 잡는다면 차차기 타이틀전 도전자로 직행할 수 있다. 웰터급 타이틀전 다음 도전자는 콜비 코빙턴(35·미국)이 확정되는 분위기다.

 

UFC288 메인카드는 한국시간으로 오는 7일 11시부터 시작한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