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에서 2700억원대 전세 사기 사건을 벌인 일당이 2021년 3월 이미 본인들의 자금 경색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에도 전세계약을 연장하고 보증금을 올리는 등 범행을 이어갔다. 현재 재판에 넘겨진 ‘건축왕’ 남모(61)씨는 사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8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남씨는 2021년 3월 21일 본인이 대표로 있는 ‘행복공간을 만드는 사람들’(행만사) 직원들에게 ‘건물 신축이나 임대보증금 상향이 이어지지 않아 자금이 경색됐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행만사는 남씨가 인천 미추홀구 등에 보유하고 있는 2700여채의 전셋집을 관리하기 위해 2009년 만든 회사다.
남씨가 미추홀구 전세 사기를 계획한 것도 2009년부터다. 남씨는 그해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원 등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토지를 매입한 뒤 본인이 운영하는 상진종합건설을 통해 빌라나 오피스텔, 소규모 아파트 등을 건설했다. 돈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충당했다. 건물을 지은 뒤엔 수탁자 등기를 한 뒤 또 다시 준공대출을 받았다. 이렇게 근저당을 설정한 남씨는 본인과 공모한 공인중개사들을 통해 세입자를 모집했다. 주택 임대를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세운 회사가 행만사인 셈이다.
행만사는 인허가 등을 담당하는 기획공무팀, 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주택관리팀, 임대주택을 중개하는 중개팀으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사업을 이어가던 남씨 일당은 2021년 3월 자금 경색 상황에 직면한다. 건물을 지을 때 본인들의 자금을 거의 투입하지 않고 대출로 충당한 탓에 매달 내야 하는 이자만 15억원 수준이었는데 이를 납부하는 게 어려워지면서다. 직원 급여 등을 포함하면 매달 17억원을 지출해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남씨는 2021년 3월 위 내용의 문자를 직원들에게 보냈고, 이후 중개팀을 소집해 정기적으로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남씨는 회의에서 중개팀 직원들에게 ‘임대보증금을 올려 받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돌려막기는 지속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결국 지난해 1월부터 임의경매가 시작되면서 남씨 일당 범행이 수면위로 드러났다.
현재 사기와 공인중개사법 위반, 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남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남씨 변호인은 지난 3일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에서 “사기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으면 공인중개사법 위반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검찰은 지난 3월 9일 남씨 재산에 대한 추징보전을 청구했고, 인천지법 형사10단독 현선혜 판사는 지난 3월 16일 청구를 인용했다. 검찰은 현재 남씨 재산에 대한 추징보전을 계속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