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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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또 다른 가짜뉴스 “한국이 중국 관광객 부풀렸다”어떻게 유포됐나 [미드나잇 이슈]

“스스로 인기 과장하려 ‘가짜 통계’ 발표해” 주장
알고 보니 중국 여행사 발표…“일본 폭로”도 거짓
1분기 中 관광객 2019년 133만명→올해 14만명
한국 단체관광 막혀…뜸한 中관광객 업계 ‘우려’

“이번 노동절 연휴 기간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이 지난해 대비 760% 늘었다고 한국 언론이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의 좋은 친구인 일본의 한 언론에 의해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 기간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4907명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 언론이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한국의 인기를 부풀려 통계를 조작한 것이다.”

 

한국 언론이 중국인 관광객이 지난해보다 760% 늘었다고 보도했다가 ‘실제로는 5000명도 되지 않는다’는 일본 언론의 폭로에 망신을 당했다는 내용의 중국 가짜뉴스. 바이두 캡처

한국 근로자의 날이자 중국 최대 연휴 중 하나인 노동절인 5월 1일, 중국 온라인에서는 ‘한국 여행’과 관련된 뉴스가 뜨거웠다.

 

제목만 봐도 상식과 거리가 먼 내용의 글이 비주류 언론, 시민기자, 블로거들에 의해 작성돼 텅쉰, 넷이즈 등 주요포털에 퍼졌다. 4월 말부터 5월 9일까지 지속적으로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며 확대 재생산됐다.

 

한국 언론이 작정하고 거짓 통계를 보도했다니 사실이라면 너무 부끄러운 일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중국 관광객이 760% 늘었다는 한국 언론 보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 언론이 한국보다 더 정확한 한국 관광 통계를 내놨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야말로 거짓이었다.

 

한국 언론이 가짜뉴스를 퍼뜨렸다는 중국 온라인의 가짜뉴스가 어떻게 생성됐는지 살펴봤다.

 

◆한국이 국제 망신 당했다?…불어난 ‘거짓’

 

논란은 4월 27일 중국 개인블로거가 쓴 글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목은 “중국인 관광객 760% 증가로 한국은 ‘국뽕’에 취했다. 중국은 옐로카드를 잊었나”다.

 

글쓴이는 여행 빗장이 풀린 뒤 올해 한국으로 향한 중국 여행객이 지난해 대비 760% 늘었다면서 “한국의 승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1월 한국이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중국 여행객들에게 노란색 카드를 패용하게 하고 격리조치했던 것을 언급하며 “한국이 중국인을 열악하게 대우했던 ‘옐로카드’ 사건을 벌써 잊고 노동절 연휴에 한국으로 몰려갔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통계를 부풀렸다는 내용의 가짜 뉴스가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집중적으로 생산됐다. 바이두 캡처

블로거 주장과 달리 지난 1월 중국인 여행객을 차별대우했다는 중국발 뉴스는 한국 정부의 사진 공개와 반박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해당 글은 이를 다시 언급하며 한국에 여행 간 중국인을 비판한 것이다. 한국 내 중국인 관광객이 760% 늘었다는 통계의 출처는 없었다.

 

이후 같은 내용의 기사가 비주류 언론과 블로그에서 다뤄졌다. 이들도 대부분 통계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그저 “한국을 여행한 중국인들이 차별대우를 받은 것을 잊지 말자”, “한국 여행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강조할 뿐이었다. 뉴스가 SNS에서 공유되면서 네티즌들은 한국에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다 한 기사가 통계의 출처를 ‘한국 언론’이라고 하자 이후 나온 뉴스들이 이를 따라 썼다. 몇몇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했다고도 했다.

 

노동절 당일 올라온 새로운 글은 “양국 관계가 긴장 상황이고 여행이 정상화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엔 이미 많은 여행객이 다녀와 볼 게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는데 연간 중국인 10만명 이상이 방문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과대광고, 혹은 가짜 데이터를 발표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38만8000명 방문 행사, 사실은 4907명…한국의 관광객 부풀리기’란 제목의 일본 기사 사진을 첨부했다.

 

이후 관련 뉴스 흐름은 “한국 언론이 한국 관광을 홍보하기 통계를 조작했다”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한국 여행객 760% 증가? 실제로는 5000명도 안돼”, “형제의 나라 일본이 진실을 폭로했다”다고 보도했다. 심지어는 “한국이 거짓 통계를 발표했다가 전 세계로부터 조롱을 당했다”고도 주장했다.

 

중국 가짜뉴스가 '한국인이 중국을 무시한다'며 근거로 제시한 인터넷 댓글. 번역기를 돌린 듯 어색한 한국어로 미루어 조작으로 의심된다. 바이두 캡처

심지어 몇몇 글은 ‘한국인들이 이렇게 중국을 무시한다’며 중국인을 욕하는 한국 네티즌 댓글을 첨부해 ‘혐한’(嫌韓)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일부 댓글은 실제 한국 포털에서 캡쳐한 것으로 보였으나, 일부 댓글은 어색한 한국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조작이 의심되기도 했다.

 

◆“일본이 폭로했다”는 데이터, 사실은 ‘한국 통계’

 

이번 가짜뉴스 행진의 ‘최종본’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축으로 한다. 하나는 ‘한국 언론이 자국을 찾는 중국인이 전년 대비 760% 늘었다고 보도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 통계가 가짜라는 사실이 일본 언론에 의해 폭로됐다’는 것이다.

 

조금만 시간을 들여 검색해보면 두 내용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한국 포털에서 중국인 관광객과 관련된 기사를 아무리 찾아봐도 760% 증가했다는 뉴스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760%란 숫자가 나온 곳은 중국 기사다. 지난 3월 30일 몇몇 중국 언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씨드립(Ctrip)에 따르면 3월 한국에서 중국 입국자에 대한 핵산검사 조치를 해제한 뒤 양측의 여행 왕래가 증가하고 있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본토 여행객의 한국 여행 주문량은 760% 늘었으며 특히 90년대생과 00년대생의 예약 비율이 40%를 차지했다. 노동절 연휴 기간 예약은 지난해보다 7배 증가했다.”

 

씨트립은 중국 최대 규모의 온라인 여행사다. 한국을 찾는 중국 여행객이 늘었다는 것은 한국 언론의 ‘애국심’에서 비롯된 조작 보도가 아니라 중국 여행사가 자사 상품 예약 건수를 바탕으로 공개한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일본 언론은 무엇을 폭로했다는 것인가. ‘한국 언론을 시원하게 응징했다’는 일본 기사는 사실 한국 언론 보도다.

 

지난달 25일 일본 야후 뉴스 페이지의 한국 뉴스 섹션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의 관중 수가 부풀려진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한국 관광업계에서는 2023∼2024년 ‘한국 관광의 해’를 앞두고 이러한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이는 ‘외국인 39만명왔다는 지역 축제, 실제론 5000명? 관광객 부풀리기 만연’이라는 제목의 국내 언론 뉴스1 기사를 그대로 전한 것이다.

 

일본 야후 뉴스에 올라온 한국 지역 축제 관광객 수 부풀리기 실태 보도. 한국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전한 것이다. 야후 재팬 뉴스 캡처

기사 제목에 언급된 숫자(38만8000명/4907명)는 충남 보령머드축제 관련 부분에서 나온다.

 

뉴스1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보령머드축제의 총방문객 수는 181만1000명이었으며 이중 외국인은 38만8000명이었다. 반면 한국관광 데이터랩에서 해당 기간 충남 보령 방문객 수는 106만2000명이며 이중 외국인은 490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고 일본 언론은 똑같이 전했다. 이 내용이 중국 SNS상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이 1년간 5000명도 안된다’고 바뀐 것이다. 

 

◆‘혐한’ 조장 가짜뉴스, 한국 관광 타격

 

중국 온라인상에서 한국과 관련된 가짜뉴스는 ‘혐한’과 아전인수격 통계 왜곡이 더해지며 구체적으로 발전했다.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종종 불거지는 한복, 김치 등이 중국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대표적인 가짜뉴스다.

 

이러한 가짜뉴스는 개인블로거, 시민기자 등이 ‘뉴스’의 형식을 차용해 쓴 개인적인 주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대중 여론’으로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확대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 이번 가짜뉴스를 접한 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동남아 관광객들은 중국인을 반긴다”, “중국을 무시하는 한국으로 여행가서는 안된다”고 반응했다.

 

이런 현상은 당장 중국인 관광객 회복을 기대하는 관련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관광업계는 최근 회복되는 외국인 관광객에 반색하고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중국인이 뜸해진 상황을 우려한다. 

 

한국관광 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1월 2만4000여명, 2월 4만5000여명, 3월 7만3000여명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1분기 방문객은 총 14만4220명으로 지난해 동기(4만967명)의 3.5배다. (관광 목적 방문객만 따지면 4315명에서 5만1039명으로 11.8배로 뛰었다. 실제 올해 1분기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대비 760%가 아닌 1082%가 늘어난 것이다. 물론 여행이 거의 막혔던 지난해와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전체 외국인 방문객 중 차지하는 비율이 8.4%에 불과해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2019년 1,2,3월엔 각각 39만2000여명, 45만3000여명, 48만7000여명의 중국인이 한국을 찾았다. 당시 전체 외국인 방문객 중 중국인 방문객은 34.7%를 차지했다. 

 

정부는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K콘텐츠를 강화하고 제주공항으로 환승시 무비자 제도를 부활시켰다. 또 중국인이 많이 사용하는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통해 기차 예매가 가능토록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행업계는 ‘큰 손’으로 통하는 중국 단체관광객이 돌아오지 않는 이상 완전한 정상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국 정부는 개별 여행을 허용하고 있지만 한국행 단체 관광은 여전히 막고 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