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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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간호법 거부권 행사 전에 여야 중재 노력 포기해선 안 돼

어제 국민의힘과 정부가 고위당정협의회를 열어 간호법 제정안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당정은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 불가피성을 건의하기로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사회적 합의 없이 법안이 통과돼 의료 현장에 심각한 갈등과 혼란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은 지난 4일 정부에 이송됐다. 오는 19일까지 대통령은 간호법을 공포하거나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대통령이 당정 건의를 수용하면 간호법 운명은 16일 예정된 국무회의에서 판가름이 난다.

간호법 제정안을 둘러싼 직역 갈등은 간호사 역할을 의사 진료 보조를 넘어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활동 영역도 의료 기관에서 지역 사회로 확장한 데서 비롯됐다. 고령화로 돌봄 시장이 커지면서 간호사들의 단독 개원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의사들의 우려다. 또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단체들도 자신들의 업무를 간호사 보조로 제한한 것을 못마땅해한다. 간호법에 반대하는 이들 13개 의료단체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17일 총파업을 불사하겠다는 강경 입장이다.

이에 맞서 대한간호협회도 지난 12일 기준 7만5239명의 단체행동 의견 조사를 진행해 이 중 98.4%(7만4035명)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전날 발표했다. 간협의 단체행동 수위와 방식도 의료단체 못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적으로 어느 한쪽의 파업은 예고된 셈이다. 의료 대란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다.

앞서 지난달 27일 민주당은 다수 의석의 힘으로 간호법을 밀어붙였다. 토론은 생략됐다. 14만명의 의사 표를 포기하더라도 46만명의 간호사 표를 얻겠다는 의도라는 비판이 작지 않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행사하는 대로, 그러지 않으면 자신들 치적으로 삼으려는 정략적 판단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중재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도 그래서다.

민주당의 갈라치기 입법의 폐해도 문제지만 보건 당국도 법 제정에 따른 의료 직역 간 갈등을 방치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종식 선언을 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의료계가 유기적인 협업은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서겠다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앞서 중재안을 찾을 여지가 남아 있다. 여야는 끝까지 그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