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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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맞은 이태원 참사 200일…생존자 “피해자 인권 침해 지속”

16일로 지난해 10월29일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한 지 200일이 지났다. 유가족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지도 200일이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이주현(28)씨는 “직접 겪은 이 사건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싶었는데 알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며 “피해자로서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됐고 여전히 권리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초반에 경찰 조사도, 향후 국정조사도 책임자 처벌 같은 핵심은 피해갔고 유족이나 생존자끼리도 정보 공유가 안  사건을 제대로 알기 어렵게 만들 때 가장 답답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사람 많은 데에 가 놀다 죽었다’는 식의 2차 가해 발언도 실상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채 잘못된 인식이 퍼진 결과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200일인 16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를 찾은 한 시민이 추모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산하 참사 인권실태조사단은 전날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하고 참사 희생자 유족과 생존자 등이 수사기관 조사와 정부 지원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인권 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참사 피해자 26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통해 이들이 어떤 인권 침해에 노출됐는지 지적했다. 보고서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마약 이야기가 떠돌고 있으니 시신을 부검해보겠느냐’ 혹은 ‘아이가 담배를 피우지 않았느냐’ 등 참사와 무관한 질문을 받은 유족 사례를 언급했다. 해당 질문을 받았던 유족은 “질문 모두가 참사 조사에 불필요하고 불쾌했다”고 말했다.

 

조사단은 피해자가 생명과 안전, 존엄, 진실, 필요한 지원, 애도하고 연대할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무책임과 피해자 인권 침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정부는 이들에 대한 혐오와 낙인을 조장하고 진상규명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민대책회의는 지난 8일부터 전날까지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200시간 농성을 벌였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법안 지난달 20일 국회에 발의됐으나 국민의힘은 이 법이 ‘재난을 정쟁화한다’며 반대한다. 

 

“출퇴근 길과 각종 행사와 불꽃축제 등 인파가 몰리는 일을 겪었음에도 지난해 핼러윈 축제에만 ‘이태원에 사람이 많이 몰려 참사가 생겼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씨는 “특별법은 이태원 참사 피해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비슷한 참사나 재난 대응을 위해 필요한 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전날 보고회에서도 “나보고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럼 희생자 159명은 그저 운으로 생사가 갈려야 했느냐”고 되물었다.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인권실태조사 보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씨는 “참사 피해자는 누가 될지 모른다”며 “피해자 일부를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안전을 위한 법인데 제정이 계속 미뤄지는 상황이 납득되지 않고 미뤄질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재난피해자 권리 보호를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가이드라인은 재난피해자가 지원 대상이 아닌 권리 주체이며 국가는 이들 지원과 회복에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가이드라인에는 재난관리 주체가 재난피해자 권리 행사를 적극 보장하고 피해 복구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차별 없이 참여하고 지원받을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인권위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 피해자 권리 보장 등을 촉구한 바 있다.


박유빈 기자 y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