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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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오셀로’의 제목을 왜 ‘이아고’라 하지 않았을까

의심과 질투의 씨앗을 키워 불안에 떨고 자멸하는 인간들 보여주는 연극 ‘오셀로’

“검은 복수여 부풀어 올라라. 내 심장은 독사에게 물렸다. 피 끓는 증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 그들을 삼켜버릴 때까지.”

사리판단 능력이 탁월하고 용맹스러운 장군으로 어떤 적과 싸워도 지지 않는 전쟁 영웅 오셀로를 한번에 무너뜨리는 건 이아고의 세 치 혀에 놀아나 스스로 키운 질투의 씨앗이다. 귀족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어인(북아프리카 지역의 흑인이나 아랍인)인 자신을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미모의 백인 아내 데스데모나와 충직하게 따르는 젊은 부하 카시오의 관계를 의심하고 질투한 끝에 아내를 살해하고 자멸한다.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연극 ‘오셀로’ 주요 장면 시연과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배우 손상규(왼쪽부터), 이자람, 유태웅, 박호산, 이설, 연출 박정희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연극 ‘오셀로’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어리석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오셀로’ 주요 장면 시연과 기자간담회에서 박정희 연출은 “‘오셀로’에 대한 첫인상은 ‘불안’이었다. 모든 인물에게 불안이 잠재돼 있다”고 말했다. “흔히 ‘오셀로’는 이아고의 연극이라고 해요. 하지만 거기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왜 셰익스피어는 제목을 이아고라 안 하고 오셀로라고 했을까. 오셀로가 가진 이질적인 특징과 감정을 지금 시대의 관객들에게 환기하고 싶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불안한 내면을 반영하듯 무대는 안쪽 깊은 곳까지 어둡고 거친 질감의 벽면이 감싸 차가운 느낌을 준다. 무대 앞쪽을 가로지르는 고인 물에 하나씩 떨어지는 물방울은 수면 위에 파장을 일으키며 극에 묘한 긴장감을 더한다. 

박 연출은 “무대는 ‘불안’이란 콘셉트에 맞춰 가장 불안한 장소이면서 안전한 장소이기도 한 지하 벙커로 구축했다”며 “물은 ‘죽음의 강’처럼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보면 현대판 지옥도를 축약했는데, 처음엔 데스데모나가 그곳에서 죽는 장면으로 연습했다가 효과적이지 않아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주인공 오셀로는 동갑내기 두 배우 박호산과 유태웅이 번갈아 맡는다. ‘군신(軍神)’이라 불릴 만큼 전쟁 영웅으로 칭송 받지만 질투와 불안 속에 추락하는 불완전한 인간을 연기한다.

박호산은 “대본을 읽었을 때 오셀로가 바보 같았다. 질투의 힘이 얼마나 강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싶었다. (무어인 용병으로서의) 열등감보다는 사랑이 컸기에 질투도 생기고 큰 실수를 한다고 해석했다”며 “또 능력 있고 날이 서 있는 장군이여야 이아고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을 때 큰 폭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극 ‘오셀로’ 공연 장면. 예술의전당 제공

유태웅은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물어보면 간단할(의심을 해소할) 일을 혼자 끙끙 앓는 게 저희도 답답했다. 자존심이나 자존감일 수 있는데, 용병으로 홀로 가진 고독감이 있지 않을까 했다”며 “무어인이 흑인이라고 하지만 분장을 특별히 하진 않았다. 연극적인 약속으로 정했다”고 했다.

 

광기 어린 욕망에 사로잡혀 간교한 계략을 꾸미고 모두를 불안 속으로 몰고 가는 이아고 역은 손상규가 열연한다. 그는 “가장 고귀한 인간이 평범하고 저열한 인간에게 추락 당하는 얘기라고 이해하고 인물의 구조를 짰다”며 “이아고는 극을 작동시키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나쁜형사’에 박호산과 함께 출연한 이설은 데스데모나로 연극에 처음 데뷔했다. 그는 “(연극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며 “데스데모나는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성녀 이미지가 강한데, 연출님과 대화하며 자기 인생을 선택한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다재다능한 소리꾼 이자람은 이아고의 아내로 데스데모나를 돌보는 에밀리아 역을 맡아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이자람은 “어렸을 때부터 연극에 대한 동경이 컸다”며 “에밀리아는 이아고가 친 그물에서 가장 중요한 손수건(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사랑의 증표로 준 것인데 간통 의심을 확신하는 매개체가 된다)이란 톱니바퀴를 맡는 캐릭터다. 연출님께서 ‘관객들이 이아고와 오셀로에게 하고 싶은 욕을 네가 시원하게 해줘야 한다’고 했는데 임무를 다하고 있다”며 웃었다. 공연은 다음달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