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 히로시마까지 안전하게 호송하는 임무가 프랑스 공군에 의해 수행돼 눈길을 끈다. 그간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 프랑스가 젤렌스키의 G7 참석 성사를 통해 자국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은 20일(현지시간) 젤렌스키가 어떤 경로로 일본까지 갔는지 전하는 기사에서 “우크라이나가 먼저 항공기 지원을 요청해 프랑스가 이를 수락했다”고 소개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지난 17일 프랑스 공군이 책임지고 젤렌스키를 히로시마까지 호송하기로 최종 결정한 뒤 G7 회의 주최국이자 의장국인 일본과 이 문제를 협의했다고 한다.
젤렌스키는 러시아군 추적을 피해 폴란드에서 프랑스 군용기에 올랐으며, 약 4시간의 비행 끝에 19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와 만난 데 이어 아랍연맹(AL) 정상회의에 참여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사우디에서 일본까지 가는 비행은 15시간 이상 걸렸다. 젤렌스키 일행, 그리고 동행한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 시간을 활용해 수면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젤렌스키 일행을 실은 프랑스 군용기가 중국 영공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는데, 중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맹방이란 점을 감안하면 다소 뜻밖이다.
항공기가 20일 오후 히로시마 공항에 착륙했을 때 기체에 선명하게 새겨진 프랑스 삼색기 문양이 단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직후 젤렌스키와 만나 회담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서 “프랑스 공화국 색상의 비행기가 히로시마에 도착했다”고 밝혀 프랑스의 역할이 상당했음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마크롱은 “그들(젤렌스키 일행)은 우크라이나의 승리와 유럽의 평화 회복을 위해 G7과 함께 일하고자 이곳(히로시마)에 왔다”고도 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미국, 영국 등 다른 서방 국가들에 비해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마크롱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한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평화의 중재자로 나설 뜻을 밝혔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특히 마크롱은 인터뷰 등에서 러시아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로이터는 “일부 동맹국을 화나게 하고 프랑스의 의도가 대체 무엇인지 경계하게 만들었던 마크롱이 히로시마에서 제대로 업적을 과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젤렌스키 일행의 호송작전에 일본과 프랑스 외에 미국도 개입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행정부 관계자는 “젤렌스키의 G7 참석을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G7 회의 주최국은 우리가 아닌 일본”이라고 답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한테 공을 넘긴 것이다. “젤렌스키가 일본으로 이동하는 동안 미군이 프랑스군에 도움을 줬느냐”는 질문에는 “답변할 내용이 없다”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