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배구 시작 5년 만에 국가대표’ 김민재 “축구 김민재 선수와 동등한 위치까지 오르게 노력할게요”

스포츠팬들에게 김민재라는 이름을 들으면 누가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한국 축구 대표팀 수비의 핵인 김민재(27·SSC 나폴리)라고 답할 것이다. 이적 첫해부터 맹활약하며 나폴리의 33년 만의 스쿠데토(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에 핵심멤버로 자리매김한 김민재는 세계 최고의 명문팀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해 뉴캐슬, 파리 생제르맹 등 다수 빅클럽에 이적설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의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배구에도 동명이인의 김민재(20)가 있다. 인하사대부고 1학년 때 뒤늦게 배구를 시작해 5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만큼 역대급 재능을 가진 미들 블로커 김민재는 소속팀인 대한항공은 물론 한국 배구의 미래로 꼽힌다. 지금의 성장세를 이어간다면 어쩌면 축구의 김민재에 필적하는 선수가 될 재목인 김민재를 2023 아시아 남자 배구 클럽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는 바레인에서 만나 짧은 배구 인생과 향후 목표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우연히 접한 배구, 김민재의 인생이 됐다

 

대부분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이 초등학교, 늦어도 중학교 때 운동을 시작하는 것을 생각하면 김민재의 배구 시작은 이례적으로 한참 늦었다. 어릴 때부터 신체조건이 좋았던 김민재는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을 비롯해 축구, 킥복싱 등 다양한 종목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김민재는 “어머니가 운동하는 것을 절대 반대하셨어요. 그래도 운동을 좋아해서 축구나 농구, 배구를 친구들과 즐기는 수준으로 하고 있었죠”라면서 “중학교 3학년 때 스포츠 클럽에서 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키가 이미 188cm였거든요. 인하사대부고가 선수가 너무 없어서 대회도 나가지 못할 상황이라 배구를 시킬만한 중학생을 찾고 있었는데, 거기에 뽑히게 되어 인하사대부고에 입학해 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라고 답했다. 이어 “어머니도 저의 공부 성적을 생각하시더니 그땐 반대를 안 하시더라고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 과감했던 프로 직행은 김민재에게 신의 한수가 됐다

 

또래들보다 훨씬 컸던 신장에 타고난 체공력까지. 가진 재능이 많았던 김민재는 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갔다. 그러나 인하사대부고가 워낙 선수층이 얇았던 탓에 전국대회 입상 기록이 전무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청소년 국제대회도 열리지 않아 대표팀도 소집되지 않아 김민재는 배구 명문대학으로의 진학이 힘든 상황이었다. 마침 김민재의 재능을 눈여겨본 프로팀들이 김민재에게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신인 드래프트에 나올 것을 제의했고, 2021~2022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민재는 2라운드 1순위, 전체 참가자 중 8번째로 대한항공에 뽑혔다.

 

김민재는 “주변에선 제가 구력이 짧으니 대학에 가라는 조언이 많았거든요. 그래도 저는 명문대에 가지 못할 거면 프로로 직행해보자라고 욕심을 냈죠”라면서 “생각보다 제 이름이 일찍 뽑혀서 정말 기뻤어요. 배구를 딱 3년 했던 제게 2라운드 1순위면 꽤 높은 지명 순위니까요”라고 설명했다.

 

김민재의 빠른 프로행은 신의 한수가 됐다. 프로팀에서 체계적인 관리와 트레이닝 프로그램 속에 김민재의 기량은 더욱 성장했다. 적응기였던 데뷔시즌을 보내고, 2년차였던 2022~2023시즌 김민재는 배구팬들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됐다. 타고난 체공력을 앞세운 김민재의 B속공은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이 지향하는 배구에 딱 들어맞았다. 시즌 초반부터 주전 자리를 꿰찬 김민재는 31경기 117세트에 출장해 234점을 올렸다. 속공 3위(63.67%), 블로킹 7위(세트당 0.521개)에 오르며 단숨에 정상급 미들 블로커로 성장했다.

 

◆ 욕심 많은 김민재 “지난 시즌은 불만족스러워요”

 

프로 2년차 만에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꿰찬 2022~2023시즌. 팀에서의 입지나 드러나는 수치나 모두 만족스러울 법하지만, 더 좋은 선수가 되고 싶은 욕심이 많은 김민재는 만족하지 않았다.

 

이유는 시즌 후반 체력이 저하된 모습이 현저하게 드러나며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5라운드까지는 주전으로 나섰던 김민재는 6라운드 들어 조재영(32)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겼다. 6라운드에 단 2경기에 나선 김민재는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조재영에게 밀려 코트에 단 한순간도 서지 못했다. 지난 시즌을 돌아보며 “너무 아쉬워요”라고 입을 뗀 김민재는 “특히 챔프전에서 뛰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쉽죠. 제가 연차도 짧고, 처음으로 풀타임으로 시즌을 치르다보니 체력 관리 노하우도 잘 알지 못 했던 거죠”라고 말했다. 이어 “초반에 주전으로 뛰지 못 하다가 마지막에 주전으로 뛰고, 챔프전까지 뛰었다면 오히려 참 좋았을 것 같아요”라면서 “이제는 노하우가 좀 생겼으니 다음 시즌부턴 처음부터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게 노력할겁니다”라고 덧붙였다.

 

◆ “미들 블로커 롤 모델은 현대캐피탈 최민호”

 

V리그에는 김민재가 본보기로 삼을 뛰어난 기량의 미들 블로커가 많다. 롤 모델이 있느냐고 묻자 한참을 고민하던 김민재는 “제 플레이 유형에서 볼 때는 현대캐피탈 (최)민호 형인 것 같아요”라면서 “키도 저랑 비슷하고, 점프력이나 체공력이 좋은 것도 저랑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대한항공 팀 동료인 김규민(33)이나 조재영은 어떻냐고 묻자 “(김)규민이형은 손목 스냅이나 손목 힘이 워낙 좋은데, 저는 그렇게는 플레이를 할 수 없으니까요. (조)재영이형이 리딩 블로킹 비결이나 기본기 같은 것도 많이 알려주세요”라면서 “한국전력의 (신)영석이형의 스텝도 제가 따라하기엔 쉽지 않아요. 물론 잘 하는 미들 블로커 형들의 장점을 다 흡수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 “국가대표에서도 주전을 따내고 싶어요”

 

2023 아시아 남자 클럽배구선수권대회를 마치면 김민재는 팀 동료인 김규민과 임동혁, 정한용과 진천선수촌에 입소해 국가대표팀에 합류한다. 남자배구 대표팀은 오는 7월 대만에서 열리는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저 대회에 출전한다.

 

이번 대표팀에는 그간 미들 블로커 붙박이였던 한국전력의 신영석(37), 현대캐피탈의 최민호(35)가 빠졌다. 대신 김민재를 비롯해 김규민(33·대한항공), 김준우(23·삼성화재), 박준혁(26·우리카드), 이상현(24·우리카드)가 뽑혔다.

 

고1 때 배구를 시작한 김민재는 5년 만에 최고의 자리인 국가대표에 뽑힌 셈이다. 김민재는 “5년 만에 뽑혔다고 해서 기쁜 건 없어요. 그냥 제일 잘 하는 선수들만 뽑는 국가대표가 됐다는 것 자체가 기뻐요. 가족들이 제 자랑을 하는 것도 좋고요”라고 답했다.

 

대표팀 미들 블로커 주전은 기량이나 그간 보여준 실적이나 가장 앞서 있는 김규민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머지 한 자리를 두고 김민재와 나머지 선수들이 경쟁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민재는 “진천에 가면 죽도록 연습해서 꼭 주전을 차지하고 싶어요. 주전을 따내면 그만큼 인정받는다는 거니까 빨리 가서 운동하고 싶어요. 대표팀에 합류할 생각에 설레요”라고 각오를 다졌다.

 

◆ “축구 김민재 선수와 동등한 위치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다”

 

인터뷰를 마치며 축구의 김민재와 동명이인인 이야기를 꺼냈다. 김민재는 “축구 김민재 선수와 제가 이름이 같다는 내용의 기사가 여러 번 났었는데, ‘김민재 선수가 그 기사를 봤을까, 배구선수에도 김민재가 있다는 것을 알까’ 이런 생각을 하긴 했었죠”라면서 “우리나라 축구 수비수 중에 가장 잘 하는 선수잖아요. 잘하는 선수랑 비교되는 거니까 기분 좋죠. 저도 동등한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