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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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 휴대폰 ‘해외 밀반출’ 일당 잡았다

장물 구매, 外人업자에 재판매
파키스탄 출신 40대 구속 송치
거주지서 휴대폰·7000만원 압수

절도범·운반책 등 조직적 범죄
서로의 존재 모른 채 개별 활동
경찰, 추가 범죄 연루 수사 중

도난당하거나 분실된 휴대전화가 재래시장을 거쳐 베트남 등에서 판매되는 조직적 정황이 드러났다. 절도범, 장물업자 및 총책, 해외 운반책 등으로 역할을 나눈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자신의 일만 담당하는 점조직으로 범죄 규모를 키워갔다.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는 도난·분실된 휴대전화를 상습적으로 사들여 장물업자에게 되판 혐의로 파키스탄 출신 귀화인 A(46)씨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21일 밝혔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소재 오피스텔에서 A씨를 긴급체포한 경찰은 주거지 수색을 통해 A씨가 집안 곳곳에 숨겨둔 장물 휴대전화 34대와 현금 6805만원을 압수했다.

분실 휴대전화를 불법 매입한 파키스탄 출신 귀화인 A씨 주거지에서 발견한 압수품들. 서울경찰청 제공

경찰 수사는 지난해 10월 피해자들이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다는 신고에서 시작됐다. 경찰에 따르면 한국인 절도범들의 손에 들어간 휴대전화는 1차로 장물업자에게 넘겨진 뒤 2차로 A씨 같은 중간장물업자에게 건네진다. 절도범들은 자신이 아는 장물업자와만 거래하기 때문에 한두 차례 중간 장물업자를 거치게 된다. 이렇게 팔린 휴대전화는 외국인 판매책, 총책을 거쳐 해외로 보내진다. 현재까지 경찰이 총책 계보도로 파악한 이는 18명에 이른다.

지난해 10월부터 약 8개월간 도난·분실된 휴대전화를 20만∼100만원에 매입한 A씨는 서울 시내 재래시장에서 베트남·몽골·스리랑카 등 외국인 장물업자에 재판매해 대당 5만∼7만원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조사됐다. 수출대행업체를 통해 정상적인 중고 휴대폰에 장물 휴대폰을 끼워 넣거나 보따리상·베트남 가이드를 통해 1대당 2만원을 주고 밀반출됐다. 이들은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공중전화, 대포폰을 이용해 절도범이나 장물범과 연락했고, 폐쇄회로(CC) TV 사각지대인 주택가 건물 계단, 차량 안 등에서 거래했다. 대포폰은 1달 주기로 변경해 경찰 수사에 대비했다.

베트남 현지에서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피싱 문자메시지가 전송되기도 했다. 비밀번호를 해제하기 위해 휴대전화 정보를 베트남 현지 조직원에게 전송하고, 다시 피해자들에게 분실 단말기를 찾은 것처럼 속이는 피싱 문자를 보내 피해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빼내 초기화한 것이다.

사진=서울경찰청 제공

장물 휴대전화가 추가 범죄에 연루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일차적으로 휴대전화와 대포폰 등을 확인했는데 아직은 그런 문제는 없었다”며 “범행에 사용된 노트북 2대와 대포폰의 포렌식을 맡길 예정이고, 결과가 나오는 데는 3∼4주가량 걸린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절도범과 장물범을 수사하면서 이들 일당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을 포착하고, 다른 가담자들에 대한 수사로 확대했다. 절도범을 바로 잡지 않고 CCTV 영상을 추적하며 장물업자와 만나는 순간을 기다려 검거했다. 지난 3월에는 베트남인 장물 총책, 4월에는 절도범과 그 일당을 추가로 구속해 수사하며 A씨에 대한 단서를 축적했다. A씨에게 장물 휴대폰을 넘긴 장물업자는 신원 확인을 마친 상태로, 다음 주 체포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지하철경찰대는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한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절도범과 장물범을 끝까지 추적할 방침”이라며 “휴대전화 제조사 등에서는 도난·분실 휴대전화를 찾았다는 문자메시지를 전송하지 않는 만큼, 도난·분실 후 발송된 해외 발신번호 문자메시지에 포함된 링크나 첨부된 앱은 절대 접속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지혜·윤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