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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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 시 읽는 마음] 실비아 샐비어 사루비아

김안녕

열두 살 잘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

철봉 매달리기 백 미터 달리기 리코더 불기

 

알 수 없어

새는 어쩜 그리 재빠르게 날아가는지

 

나를 빼고

나만 빼고

사람들은 노래를 부른다

야호를 외친다 하찮은 소금쟁이와도 친구가 된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참기름 향이 근사한 김밥을 나누어 먹는다

 

참기름 냄새를 맡으면 외로워진다

학교 화단에 핀 사루비아를 보면 목이 멘다

붉어지는 일에도 끝은 있을까

(후략)

체육에는 소질이 없었다. 제대로 매달리지도 달리지도 못했다. 늘 너무 늦었고 자주 넘어졌다. 무릎에 난 피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는 애였다, 나는. 리코더도 멜로디언도 좋아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멋대로 엉뚱한 곳을 향하는 바람에. 시인도 그랬을까. 벌써 오래전, 어린 날의 일일뿐인데 그때 그 시간은 어쩐지 지금 이 삶의 예시(豫示)같이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빈 운동장에 혼자 남는다. 낯선 것들이 그득 핀 화단 옆을 서성인다. 꽃이 슬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열두 살. 그때와 다름없이. 여름 내음이 스멀거리면 샐비어가 온다. 때로는 깨꽃으로 때로는 사루비아로. “붉어지는 일”에는 이처럼 끝이 없는 것.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