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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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중 전략대화 추진, ‘샌드위치’ 반도체 등 난제 풀어야

한국 외교가 안보냐 시장이냐의 시험대에 올랐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그제 “중국, 러시아와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 있고 고위급 레벨에서도 필요한 현안에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며 “한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간에 양자 간 전략대화를 시작해 보려 한다”고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곧 중국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탈중국은 없다”고 했다. 미·중 간 신냉전기에 동맹 강화가 최우선 가치이지만 경제도 포기할 수 없는 고민이 묻어난다.

발등의 불은 날로 격화하는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는 일이다. 중국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폐막에 맞춰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제품에 대해 국가안보 위험을 이유로 자국 내 판매를 금지했다. 미국의 대중 장비 수출 규제에 맞서 첫 보복에 나선 것이다. 미 상무부는 근거 없는 제재라며 “주요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해 해결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G7 공동성명에서도 경제 보복과 희귀자원 무기화 등 중국의 불공정한 경제적 강압에 맞서는 신규 플랫폼을 창설하는 내용이 담겼다.

마이크론 제재에 반사 이익보다 걱정이 앞선다. 중국은 첨단 반도체를 한국 업체에, 구형의 경우 자국 업체로 대체하려 할 게 뻔하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초 “한국 기업이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우지 말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면하기 어렵다. 당장 중국 내 한국 기업에 대한 미 장비 반입 금지 유예 기한이 10월로 끝나는데 1년 추가 연장을 장담할 수 없다. 중국의 강압도 우려된다.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5%를 중국에서 생산 중이다. 중국이 국내 기업까지 보복에 나서면 그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다. 우리로서는 세계 반도체 소비의 24%를 차지하는 중국이나 뛰어난 설계 역량과 원천 기술을 보유한 미국 모두 놓쳐서는 안 된다.

‘모 아니면 도’식의 접근은 자멸의 길이다. 자유연대를 강화하되 국익을 중시하는 정교한 경제 안보 전략이 필요한 때다. 미국과 중국을 모두 설득해 위험을 최소화하고 실리를 챙겨야 한다. 한국의 반도체 공급 확대 제한이 외려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미국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중국도 미 주도 공급망에 편입될 수밖에 없는 한국 현실을 모를 리 없다. 신냉전 파고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미·중 모두가 인정하는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핵심 기술 개발에 국가의 명운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