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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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채점 전에 답안지 609건 파쇄했다니… 국가 관리 시험 맞나

인력공단직원 취합 누락 실수
한 달 지나 확인, 수험생들 분노
엄중 문책과 재발 방지책 필요

국가자격시험 답안지를 채점도 하기 전에 파쇄해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벌어진 일이다. 공단은 4월23일 실시한 ‘2023년 정기 기사·산업기사 제1회 실기시험’에서 서울 은평구 연서중학교의 답안지 609건을 파쇄하는 사고가 있었다고 어제 밝혔다. 결과를 학수고대하던 응시자들로서는 당혹감을 넘어 분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더불어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가장 중요한 시험에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한 편의 코미디 같다. 당일 해당 고사장에서 치러진 건설기계설비기사 등 61개 종목 시험 답안지는 포대에 담겨 서울서부지사로 운반됐다. 관내 16개 시험장 답안지가 모두 취합되는 곳이다. 문제는 연서중학교 고사장 답안지를 제외하고 15개 시험장 답안지만 금고에 들어간 점이다. 답안지 609건은 직원 실수로 금고 옆 창고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튿날 답안지를 공단 본부로 보낼 때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일 채점할 때서야 누락 사실이 드러났다. 이미 서울서부지사 측이 답안지를 잔여 문제지와 인쇄물 등과 함께 파쇄한 뒤였다. 시험 답안지를 인수인계하고 입출고할 때 수량 확인이 기본 중의 기본일 텐테 한 달 가까이 되도록 누락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산업인력공단은 근로자 평생 학습과 직업 능력 개발 훈련을 실시하고 자격 검정 등을 주관하는 공공기관이다. 공인중개사, 관세사, 세무사, 변리사, 감정평가사 등 37개 국가전문자격시험과 각 분야 기술사·기능장·기사·산업기사·기능사 5가지 등급의 국가기술자격시험을 주관한다. 지난해에만 60만명 가까운 인원이 기술자격을 취득했을 정도로 관련 업무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런 만큼 투명하고 한 치의 빈틈 없이 관리하고 공정하게 평가해야 하는 시험이다. 공단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공단은 철저하게 진상을 파악해 책임자를 문책하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단은 피해 수험생들에게 교통비 보상과 추가 시험 기회 제공 방안을 내놓았으나 시험마다 난이도가 달라서 형평성을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단은 해당 자격이 필요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1년에 4차례 실시되는 이 시험을 위해 땀 흘리며 기술을 익혀 온 이들이다. 공단이 뼈를 깎는 쇄신으로 국가 공인 시험 기관으로서 위상을 회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