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이주민도 청소년답게

우리 센터에는 청소년들이 온다. 약속도 없이 불쑥 나타나는 아이들은 때로 슬픈 일로, 아주 가끔 좋은 일로, 때론 이유 없이 찾아온다. 모두 이주배경 청소년들이다.

지난달 말에는 퇴근 도장을 찍으려는데 한 아이가 담임 선생님을 찾으며 들어섰다. 5분 전에 퇴근했다는 말에 울먹인다. 전화로 연결해 줬더니 울음 반 이야기가 반이다. 도대체 뭐가 저리 서러운지. 전학 간 중학교에서 친구들과도 말이 안 통하고 선생님도 무섭다며 다음날 다시 와서 하소연하고 돌아갔다. 그 뒤로 잠잠한 걸 보니 견딜 만한가 보다.

5월 연휴 전날은 제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움틈학교 졸업생이 찾아왔다. 공부는 어떤지 기숙사 생활은 어떤지 묻는 말에 대답은 짧았지만 싱글대는 표정이 백 마디 말을 대신했다. 다행이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며칠 전에는 외출 중에 전화를 받았다. 몇 년 전 한국어 교실에 다녔던 학생이 찾아와서 기다린단다. 이름은 가물거리는데 멀끔한 청년이 되어 돌아온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다. 천안에 있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데 면접 보러 서울에 왔단다. 한국말도 늘었고 찾아 주고 기다려주는 의리까지 더해져서 흐뭇했다. 더 나이 먹기 전에 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라도 보라는 말은 담아두었다.

시간은 공평하다. 친구도 없고 언어도 다르고 예측 불가능한 낯선 세상에 발을 딛고 새로 시작하는 청소년에게도 똑같이 주어진다. 학교에 들어와서 미처 알지 못하는 학교문화와 수업으로 긴장했고 그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도전할 수 없어서 낙심했고 자신의 기량만큼 인정받지 못해서 우울했다. 한국어 배워가면서 수업을 따라갈 거라 여겼는데 쉽지 않았다. 적응하면서 중학교를 마치고 싶었는데 시간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고등학교는 두 손 불끈 쥐고 가야 하는 거친 오르막이다. 미처 오르지도 못했는데 하산할 시간이 되고 만다.

그래도 학교에 편입된 청소년은 따라갈 길이 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은 따라갈 길이 없다. 이민정책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김현숙의 ‘중도입국 청소년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목표 달성에 대한 자신감이 재학생 청소년은 10점 만점에 7.02점이고 비재학생 청소년은 3.67점에 그쳤다.

학교 편입은 준비가 안 되니 한국어 배우러 다녔다가 돈 벌러 다녔다가 청소년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채로 10대를 보내다 청년이 된다. 부모를 원망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된 후에 건축일도 따라다녀 보고, 식당 일도 해보고, 판매도 해보고 육체노동을 두루 섭렵하였다. 육체노동으로 먹고살 수는 있겠으나 4차 산업이 이끌어가는 21세기를 초졸이나 중졸 학력으로 버티며 살아갈 수 있을까? 3.67점의 자신감은 이들의 걱정과 불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들의 이주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세계화 앞에서 정주를 장담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든 이주민의 고달픔은 부모만의 몫이었으면 좋겠다. 청소년은 그냥 청소년답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디서든 자신감을 갖고 정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