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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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이런 전직 대통령이 있었나

“퇴임 후 잊힌 삶 살겠다”던 문재인
책방 내고 영화 찍는 등 자기 정치
온갖 실정에도 “5년간 성취” 강변
후안무치 행태 언제까지 봐야 하나

20대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 3월 ‘내 편만 바라본 5년’이란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5년을 돌아보는 내용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당선된 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국민 통합을 외쳤지만 임기 내내 ‘내 편’만 바라보고 국정을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문 전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도 진영 갈등을 부추겨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행태를 보였다.

문 전 대통령의 6년 전 취임사는 명문(名文)으로 꼽힌다. 그는 진솔하게 협치와 소통, 탈권위를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이 되겠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다” 등등. 백미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대목이었다. 전임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에 지쳤던 국민은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문재인정부 임기 5년간 목도한 현실은 그 화려한 수사와는 딴판이었다. 말 따로 행동 따로였다.

원재연 논설위원

이런 행태는 퇴임 후에도 이어진다. 문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온 지 1년이 됐지만 달라진 게 없다. “퇴임 후에는 잊혀진 삶을 살겠다”면서 현실 정치와는 담을 쌓을 것처럼 하더니 정반대 행보를 보인다. 지난달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근처에 평산책방을 열었고, 이달엔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를 개봉했다. 사저에서 정치권 인사들을 수시로 만나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을 올리며 책 추천 글도 게시했다. 며칠 전엔 웹툰까지 추천했다. 사실상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퇴임 대통령 모습이다.

문 전 대통령이 책방지기로 활동하는 평산책방은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수만명이 다녀갔고 책도 2만1000여권을 팔았다고 한다. 잡음도 잇따랐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면서 8시간 근무자에게 점심만 제공하겠다고 했다가 ‘열정 페이’란 지적이 잇따르자 철회했다. 공익사업이라면서 사업자 명의를 재단이 아닌 문 전 대통령 개인으로 한 것도 논란이 됐다. 이 책방이 친문의 정치적 거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영화 ‘문재인입니다’도 논란을 빚었다. 잊혀지겠다는 사람이 퇴임 후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를 찍은 것도 황당하지만 문 전 대통령 발언은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그는 사전 공개된 장면에서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개봉된 영화에선 이 발언이 빠졌지만 현실과 괴리된 인식엔 변화가 없음을 확인케 한다. 그의 눈에는 문재인정부 5년 실정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나라와 국민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고질적 행태는 여전하다.

문재인정부 정책 실패와 실정은 경제, 외교안보, 원전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20번 넘게 부동산 대책을 냈지만 집값은 ‘영끌’을 해도 감당할 수 없게 치솟았다. 그 피해는 주거 약자에게 집중됐다. 급등한 최저임금 등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정책으로 경제에 주름살이 깊어졌다. 좋은 일자리는 줄고 노인·알바 자리만 늘었다. 세금 퍼붓기로 국가부채가 1000조원을 돌파해 미래 세대에게 빚더미를 떠넘겼다. 안보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서 미국에 보증까지 섰지만 돌아온 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와 남한에 대한 위협이었다. 그런데도 일말의 반성도 찾아볼 수 없다.

남탓을 하는 것도 그대로다. 문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현실 정치에 끼어들면서도 “(여권이) 끊임없이 나를 현실 정치로 소환하고 있으니까 (잊히고 싶다는) 꿈도 허망한 일이 됐다”고 했다. 문재인정권은 임기 내내 갈라치기와 위선, 내로남불, 적반하장으로 국민을 짜증나고 힘들게 했다. 지난 5년도 모자라 앞으로도 이런 후안무치한 행태를 지켜봐야 하나.


원재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