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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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韓, 마이크론 中 공백 채우지 마”… K칩 ‘어부지리’ 경계

하원 특위 위원장 “동맹국 韓 행동해야”
사실상 삼성·SK 반사이익 차단 메시지

中의 마이크론 판매 금지 결정 배경에
韓·美 공급망 구조 균열 노림수 분석도

韓은 “한국기업 中 증산 범위 늘려달라”
美 가드레일 세부 규정 완화 공식 요청

중국의 미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 마이크론 제재 이후 미국에서 그 공백을 한국이 메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 하원의 ‘미국과 중국공산당 간 전략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 소속 마이크 갤러거 하원의원은 23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의 수출 허가가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경제적 강압을 직접 경험한 동맹국인 한국도 (한국 기업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왼쪽 두 번째)이 22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 있는 반도체 기업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 본사를 방문해 새 연구 시설에 쓰일 주춧돌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고 있다. AMAT는 이날 40억달러(약 5조원)를 투입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구 시설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서니베일=AP연합뉴스

마이크론 반도체 제품의 중국 판매가 금지되면서 중국에 반도체 공백이 생길 경우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시설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미 의회에서 공개적으로 제기된 것이다. 마이크론의 주력인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삼성과 SK가 현지서 생산하는 제품이 중국 시장 전체의 80%가량을 점유하고 있어 ‘한국이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차단하라’는 갤러거 위원장의 말은 사실상 두 회사 스스로 그런 행위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 삼성과 SK가 마이크론 제재의 반사 이익을 누리지 못하게 하라는 요구다.

실제 중국의 마이크론 반도체 판매 금지 결정 배경에 반도체 공급망 구조에서 미국과 한국 사이에 틈을 벌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도 전날 한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이 마이크론을 차단하면서 중국 반도체 업계에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동시에 이 회사가 차지하고 있던 시장에 다른 동맹국이 뛰어들 경우 미국과 동맹국 간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갤러거 위원장은 중국 반도체 생산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에 대한 제재도 요청했다. 갤러거 위원장은 “미국 상무부는 CXMT를 블랙리스트에 추가하고 어떤 미국 기술도 수준과 무관하게 CXMT나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다른 중국 기업에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중국에 우리 기업들과 동맹들을 상대로 한 경제적 강압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마이크론 제품 판매 금지 결정을 내린 만큼 미국 역시 중국의 반도체 기업에 제재로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한국 정부와 기업은 미국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대한 미 상무부의 ‘가드레일’(안전장치) 세부 규정과 관련, 중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장할 범위를 두 배로 늘려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전날 미국 관보에 게시된 의견서 공개본에서 “규정안에 있는 반도체 생산능력의 ‘실질적 확장’과 ‘레거시(범용) 반도체’ 등 핵심 용어의 현재 정의를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의견서 비공개본에서는 ‘첨단 반도체의 실질적 확장 기준을 기존 5%에서 10%로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 로직반도체와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 첨단 반도체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다.

가드레일 규정안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이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중대한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확장을 첨단 반도체의 경우 5% 이상, 이전 세대의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으로 규정했다.

삼성전자는 중국 내 반도체 공장 확장에 따른 보조금 환수 규정과 중국을 포함한 우려 국가와의 기술 제휴 시 보조금을 환수하는 조치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요청했다. 대만의 TSMC는 보조금 수령 시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 이상 ‘중대 거래’에 대한 유연성을 요구하고, 생산시설 확장에 클린룸 요건을 추가해 줄 것을 요구했다. 클린룸은 수율을 높이기 위해 미세먼지 등 오염 물질을 제어할 수 있는 양압 설비 등을 갖춘 반도체 품질 관리의 핵심 시설이다. 이 공간의 크기가 반도체 제조 시설의 생산 능력을 결정하기 때문에 확장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우리 반도체 업계는 가드레일이 적용되는 우려 국가의 정의가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수출 통제 명단에 포함된 기업 등으로 그 범위를 좁혀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