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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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경기 반등도 ‘암울’…한은 “금리인하 예측 시기상조” [韓銀, 성장률 전망치 하향]

2023년 전망치 1.6%→1.4% 하향

IT·반도체 경기회복 더디고
기대했던 對中 무역도 주춤
경제수장들 ‘상저하고’ 전망
기준금리 3연속 3.5% 동결

3대 걸림돌에… 성장률 낮춘 韓銀

대중수출 부진… 1분기 0.3% 성장
민간 소비 살아나 그나마 다행
선진국 등 금융불안 확대 땐 최악

韓銀, 경기침체 우려에 금리 동결
식료품·에너지 뺀 근원물가 높아

1.75%P로 유지되는 한·미 금리차
美, 베이비 스텝 땐 2%P까지 벌어져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자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파급 효과도 예상보다 더디게 나타나는 데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경기 부진도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하반기 전망이 보다 어두워진 영향이다.

 

경기 침체 우려에 무게가 실리면서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3회 연속으로 동결했다. 시장에서는 이제 금리 인하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연내 인하를 점치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한은은 물가상승률 목표치(2%)를 달성할 때까지 금리 인하를 언급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신축 본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상저하고’지만… 하반기 성장 더뎌

 

이창용 한은 총재는 25일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4%로 2월 전망 때(1.6%)보다 낮추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2.3%로 0.1%포인트 내리면서 우리 경제의 부진 요인으로 IT, 반도체, 중국 세 가지를 꼽았다.

 

이 총재는 “IT와 반도체 경기 회복이 연기되고, 중국 경제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느렸다”며 “중국 성장은 내수 중심으로 가서 주변국 전파 속도가 느리며, (중국 영향으로) 반도체 경기 회복 전망(시점)은 올해 3분기에서 연기됐다”고 성장률 전망치 하향 이유를 설명했다.

 

중국 등 대외 여건 불확실성은 하반기 우리 경제성장률을 좌우할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전망’에서 시나리오 분석을 통해 중국의 경제 회복이 지연되고, 미국 등 선진국의 금융 불안이 확대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성장률이 1.1%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상반기 경제성장률도 더딘 걸음을 걸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올해 1분기는 기대했던 대중국 무역 회복세가 약해지고 IT 부진이 이어지면서 0.3% 성장에 그쳤다. 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로 인한 민간 소비 회복 덕분에 간신히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면했다. 올해 2분기를 견인할 회복 요인도 마땅치 않아 상반기 저성장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는 게 한은의 예상이다.

 

경제 수장들은 ‘상반기 저성장, 하반기 고성장’의 ‘상저하고’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유지하고 있다.

전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저하고 전망이 여전히 유효하다”며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총재도 이날 “상저하고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묘한 차이가 엿보인다. 이 총재는 올해 경제성장률 1.4%가 비관적이라는 시각에 대해 “과도하다”고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반기 우리 경제의 회복 속도가 더뎌지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나빠질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게 됐다. ‘상저하고’ 기조가 계속되더라도 상반기 저성장은 그대로, 하반기 성장 고점은 낮아진다는 의미다.

 

한은이 이날 올해 우리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2월 전망(260억달러)보다 20억달러 감소한 240억달러로 내다본 것도 하반기 성장이 부진할 것이라는 맥락에서다. 한은은 기존에 하반기 304억달러 흑자를 전망했으나, 이번 전망에서는 흑자 폭을 256억달러로 축소했다. 상반기 적자 폭 전망치는 기존 44억달러에서 16억달러로 줄었으나 적자는 면치 못할 것으로 봤다. 한은의 예상대로라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지난해보다도 48억달러 줄어 2011년(166억달러) 이후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게 된다.

 

한은은 “(경상수지가) 당분간 균형 내외 수준에 머물다가 하반기 이후 상품 수출 개선 등에 힘입어 흑자 기조를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산항 신선대와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금리 인하 기대감 ↑… 한은 “시기상조”

 

경기 침체 신호가 뚜렷해지면서 한은은 이날 만장일치로 현행 3.50%인 기준금리에 대해 동결 결정을 내렸다. 지난 2월, 4월에 이어 3회 연속 동결 결정이다. 금통위원 6인 모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할 여지를 열어 뒀지만, 시장에서는 사실상 ‘금리 인상기가 마무리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3연속 동결에 일각에서는 한은이 연내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노무라홀딩스 자료를 인용해 한국이 이르면 8월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금통위 후 “수출 경기 부진, 세수 부족 등으로 인한 압력이 예상보다 강해질 경우 10월 (금리) 인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한은은 시장의 기대가 과도하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여전히 고공 행진하는 물가가 가장 큰 이유다. 물가상승률은 지난달 14개월 만에 3%대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한은 목표치인 2%보다는 높은 상황이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상승률은 떨어지지 않아 긴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근원물가상승률은 3개월 연속 4.0%를 기록 중이다. 한은은 이날 올해 근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3.3%로 올렸다.

지난 23일 서울에 위치한 은행에 대출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이 총재는 4월 물가상승률이 3.7%로 하락한 점을 언급하며 “지난달(금통위 때)에 비해 (올해) 물가상승률이 3%대로 내려가는 것은 조금 더 명확해졌지만, 목표치인 2%로 내려갈 것이냐는 오히려 확신이 줄었다”며 “작년 유가 상승 등으로 인한 기저 효과가 지나면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가 같이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물가가 확실히 2%에 수렴하는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인하 시기를 언급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美 연준 6월 ‘베이비스텝’ 하면 2%P 금리 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국 중앙은행의 긴축 종료 여부도 연내 인하를 쉽사리 언급할 수 없는 요인이다. 한은은 기계적으로 미국의 정책금리(기준금리)를 따라가지는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연준의 행보를 참고하지는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우리가 먼저 성급하게 결정하기보다는 (연준의) 영향을 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연준은 다음달 13∼14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한다. 연준이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경우 한·미 금리 차는 사상 처음으로 2.00%포인트대에 도달하게 된다. 금리 차 확대는 일반적으로 원화 약세와 외국인 투자자 자금 이탈 요인으로 작용한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지난 5월 3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워싱턴DC 신화=연합뉴스

시장에서는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지만, 인상을 점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선물시장 투자자들은 6월 금리 동결 확률을 65.8%로 보고 있다. 전날(71.9%)보다 동결을 점치는 의견이 줄었다.

 

연준 내에서도 향후 기준금리 경로와 관련해 동결과 인상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연준이 24일 공개한 5월 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몇몇(several) 참석자들은 “경제가 현재 전망대로 전개된다면 이번 회의 이후에 추가 정책 강화는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 전망이 맞아떨어질 경우 더는 기준금리를 올릴 필요가 없다는 시각을 나타낸 것이다. 반면 일부(some) 다른 참석자들은 “물가상승률을 2% 목표치로 되돌리기 위한 진전 속도가 여전히 느리다”면서 “향후 회의에서 추가 정책 강화가 타당할 것 같다”는 반론을 폈다고 연준은 전했다.


이병훈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