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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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특수학교 192개교 중 농학교는 14곳 불과 [심층기획-말뿐인 공용어…설 곳 없는 한국수어(手語)]

청각장애학생 절반 일반학교 재학 중
수어 구사 못해도 특수학교 교사 가능
“지적장애 위주의 교육… 학습권 침해도”

청각장애 학생 대부분은 장애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을 받지 못하는 등 학습권을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29일 교육부가 지난해 발표한 ‘특수교육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 운영되는 국·공·사립 특수학교 192개교 중 청각장애 특수학교는 14개교에 불과하다. 그마저 수도권(7개교)에 몰려 있고 광주, 대전, 경상도 등에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파악한 청각장애 특수교육대상자 2961명 중 과반인 1689명(57%)은 일반학교 일반학급에 재학 중이다. 하지만 청각장애 학생이 수어를 사용하지 않는 일반학교에서 공부하기는 쉽지 않다. 교사 입 모양에만 의존해 수업을 들어야 해서 학습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학교 내에 설치된 특수학급 역시 장애 특성을 세심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녀가 일반학교에 진학해 청인(청각을 사용하는 사람) 사회에 녹아들기 바라는 부모의 바람, 만족스럽지 못한 농학교 교육과정 등을 이유로 청각장애 학생 상당수는 일반학교를 다니는 상황이다.

특수학교를 가더라도 수어를 쓰는 교사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은 청각장애교사자격증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특수교육자격증 제도만 두고 있다. 수어 구사력 등 청각장애 학생 교육에 전문성을 갖추지 않은 인력도 특수학교 근무가 가능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수어가 아예 새로운 언어체계인 만큼 수어 구사능력 여부에 따라 농인 교육의 질적인 차이가 크다고 지적한다.

농학교가 아닌 일반 특수학교에서는 지적·지체장애 등 다른 유형의 장애 학생과 함께 수업을 받는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다. 내용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지적장애 학생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청각장애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될 수 있어서다. 이는 청각장애 학생의 일반학교 진학 증가로 학생 수를 유지하지 못한 농학교가 다른 유형의 장애 학생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문제다.

결과적으로 현재 청각장애 학생 맞춤 교육은 어디에서도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실정이다. 농인권 활동을 하다가 수어통역사로 일하는 A(56)씨는 “통합교육 환경에서는 수어 선생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농학교도 많이 줄어서 이제 순수하게 청각장애 학생만 있는 학교는 얼마 없다”며 “수어는 하나의 언어이자 나름의 문화인데 지금까지 이러한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 사회통합만 바라본 것”이라고 꼬집었다.

 

<관련 기사>

 

[심층기획-말뿐인 공용어…설 곳 없는 한국수어(手語)]

 

<상> ‘소리강요사회’ 속 외면받는 수어 교육

 

① [단독] 무늬뿐인 장애학생 통합교육, 특수학교 재학 절반은 전학생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529509059

 

② ‘청능주의의 폐해’… 농인 95%가 10살 넘어 수어 배운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529509101

 

③ 전국 특수학교 192개교 중 농학교는 14곳 불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529509100

 

<중> 수어통역, 법만 만들고 예산은 나 몰라라

 

④ [단독] 한 달 800건 넘게 수어 통역도… 격무에 이직 빈번 농인만 속앓이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530514742

 

⑤ TV자막 아바타수어 번역…예산 부족에 상용화 난항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530514732

 

<하> 문화 빈곤 시달리는 수어 사용자

 

⑥ [단독] 한글 단어에 수어만 연결 ‘반쪽 사전’… “유튜브 보고 배워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531516227

 

⑦ [단독] 청각장애인 10명 중 3명 “1년간 영화관람 못했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531516226

 

<다하지 못한 이야기>

 

⑧ 침묵과 소리의 경계… ‘소리 없이 빛나는’ 코다(CODA)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3504469

 

⑨ 농인 수어통역사를 아시나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3505351

 

⑩ 0.0007%의 기회…장애인·비장애인 ‘같이’ 관람하는 ‘가치봄’ 영화 관람해보니 [밀착취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4500189


박유빈 기자 y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