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현직 고위 간부들의 ‘아빠 찬스’ 의혹이 매일 새롭게 터져 나오고 있다. 북한 해킹 공격에 이어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는 선관위가 ‘소쿠리 투표 논란’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한 모양새다.
◆채용 계획 단계부터 내정 의혹
자녀 특혜 채용 논란으로 사의를 표명한 송봉섭 사무차장의 자녀가 채용 계획 단계에서 이미 내정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30일 추가로 제기됐다.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실이 제출받은 충북선관위의 ‘2018년도 경력경쟁채용 시험 실시 계획’ 문건에는 송 차장 자녀 A씨의 소속, 경력, 학력 등 인적 사항이 기재돼 있다.
A씨는 충남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18년 ‘비다수인 대상 채용’으로 충북 선관위에 경력 채용됐다. 비다수인 채용은 모집 공고 없이 결원이 생겼을 때 해당 지자체로부터 추천받아 채용하는 방식이다. A씨 채용을 전제로 절차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A씨는 채용 면접에서 면접위원 3명으로부터 모두 만점을 받았다.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실에 따르면 신우용 제주선관위 상임위원 자녀 B씨의 2021년 서울선관위 경력채용 응시 자기소개서에는 유력 대권주자였던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사실을 두 차례 강조한 내용이 적힌 것으로도 드러났다. 이 응시자는 아버지 동료로부터 만점을 받아 최종 합격했다.
◆사면초가 선관위, 빗장 풀까
내부의 ‘아빠 찬스’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그동안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며 외부 개입을 극도로 꺼려 왔던 선관위도 합동조사와 수사 의뢰 등을 검토하고 나섰다. 앞서 선관위는 북한의 해킹 공격으로 국가정보원의 보안 점검 권고를 받고도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이를 거부할 만큼 외부 기관 수사나 조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바 있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이날 경기 과천 선관위 청사에서 선관위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앞으로 전수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이미 5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자녀의 선관위 재직 여부를 조사 중인데, 국민권익위원회와 합동조사 등을 통해 강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노 위원장은 이날 긴급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들과 만나 “(권익위 합동조사를) 내부적으로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현희 권익위원장은 이날 선관위를 향해 “선관위가 헌법 기관이고 정치적 독립성을 가진 기관인 만큼 권익위에서 선관위의 협조가 없으면 사실상 실태조사에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 “셀프 조사보다는 객관적인 (권익위의) 채용비리 통합신고센터를 이용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촉구했다. 선관위는 지난해 김세환 당시 사무총장 아들의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자체 감사 결과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없다고 결론 내려 눈총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선관위가 자녀 특혜 채용 논란으로 사의를 표명한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 차장 등에 대해 특별감사위원회 감사 결과에 따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노 위원장은 이에 대해 “내일(31일) 입장을 발표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선관위는 이날 긴급위원회의에서 외부 사무총장 영입 방안을 논의했다. 외부 출신 선관위 사무총장은 1988년 사임한 법제처 출신 한원도 전 사무총장이 마지막으로, 이후 15명의 사무총장이 내부 승진으로 임명됐다. A씨 사례와 같은 비다수인 대상 채용을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與 압박에도 사퇴 가능성 작아
여당은 노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며 선관위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국민에 대해서는 공정이라는 잣대를 갖고 심판하는 입장에 있는 선관위가 무소불위의 권한과 지위를 남용하면서 이렇게 내부적으로 곪았다는 것은 충격적”이라면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선관위 안팎에서는 노 위원장의 사퇴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 위원장은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이 응할 때까지 그런 (제도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국민을 또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