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행위가 예고까지 된 상황에서 위급재난문자 오발령이라니요. 서울시 등이 오히려 불안감과 혼란을 부추긴 셈입니다.”
“정부 대응이 이리 엉망인데 진짜 위급 상황이 벌어졌을 때 관련 경계 문자를 국민들이 얼마나 신뢰할지, 대피는 신속하게 할지 걱정스럽네요.”
31일 오전 북한의 우주발사체 도발에 발송된 서울시의 경계경보 위급재난문자가 오발령으로 정정되자 시민들이 질타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서울시민 등이 오전 일찍부터 불안감에 떨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와 서울시가 위기대응 체계의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더구나 최근 정부가 일상의 안전 문제에 온전히 대응하지 못했던 상황이 겹치면서 시민 안전과 직결되는 안보 위기 상황 대응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관계 기관들이 책임 면피 주장을 할 게 아니라, 위기 상황을 상정해 소통해야 한다는 조언도 쏟아졌다. 당장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경보 발령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아침 서울시민들은 불안감, 공포감, 초조함, 혼돈, 황당함 등 여러 감정을 경험했다. 이른 아침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들은 후 대피를 준비하라는 재난문자를 받은 1000만 시민들은 정작 경계경보가 발령된 이유와 대피 장소를 알지 못했다. 대혼란이 빚어졌다. 공포의 시간 끝에 마주한 것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행정안전부와 서울시의 네 탓 공방이었다.
행안부는 발사 소식 직후 백령·대청면에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행안부 중앙통제소는 17개 시·도에 ‘현재시각, 백령면 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이라는 지령방송을 보냈다.
두 기관의 혼선은 ‘미수신 지역’이라는 문구에서 발생했다. 행안부는 미수신 지역이 백령·대청면 지역 중 기술적 결함 등으로 경보를 못 받은 지역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민방위경보통제소는 자체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지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6시41분 “오전 6시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위급재난문자를 보냈다. 행안부는 그로부터 22분 만인 오전 7시3분 위급재난문자를 통해 “오전 6시41분 서울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임을 알려드림”이라고 정정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오전 7시25분 다시 안전안내문자를 보내 “서울시 전 지역 경계경보 해제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전했다.
행안부는 오전 8시 입장문을 내고 “서울시 경계경보 오발령은 행안부 요청에 따른 것이 아니다”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서울시는 직후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기 전에는 우선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상황 확인 후 해제하는 것이 비상 상황 시 당연한 절차”라고 주장했다.
◆“전쟁 난 줄”…시민 혼란 부추겨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난데없는 사이렌 소리에 당황했다가 사태를 파악하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모(29)씨는 “재난문자에 ‘대피하라’는 말만 있고 상황 설명이나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안내는 전혀 없었다”며 “불분명한 문자에 불안감만 가중됐다”고 불만을 표했다. 은평구 주민 정모(40)씨는 “예산사업인 재난문자 발송을 너무 경솔하게 하는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서울시의 위급재난문자 발송 직후 국내 최대 포털 네이버는 무슨 일인지 확인에 나선 사람들이 몰리며 접속 장애를 겪었다. 이날 오전 6시43분부터 48분까지 5분간 모바일 버전이 마비됐다. 마포구 주민 김모(36)씨는 “네이버도 먹통이라 진짜 전쟁이 벌어졌나 걱정이 들더라”라고 황당해했다. 가까운 민방위 대피소 정보는 행안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안전디딤돌’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대다수 시민은 앱의 존재를 몰라 당황했다.
서울시는 행정안전부 예규인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라 재난문자를 작성했다는 입장이다. 규정에는 경계경보와 관련해 기본 문안을 활용하되, 상황에 맞는 문안으로 수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규정만 따랐을 뿐, 시민들이 겪을 혼란은 뒷전이었다. 서울시 조례에도 재난문자 내용 규정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의힘 소영철 서울시의원은 이날 오후 ‘서울특별시 재난 예보·경보시스템 구축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서울시 안전경보 체계에 미비점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오전 6시32분 서울시에 경계경보가 발령됐지만, 정작 문자는 9분 후인 오전 6시41분 발송됐다. 그 사이 매뉴얼에 따라 재난문자 발송 승인은 서울시 안전총괄과장이 했으며, 윗선으로는 그 후에야 보고가 이뤄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가 처음 문자를 보낸 후 경계경보 해제를 알리는 문자를 보내기까지도 44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행안부가 오발령 정정 문자를 보낸 후로도 서울시는 22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며 시민 혼란을 연장했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은 “북한이 미리 미사일 발사를 예고했는데 행안부와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보낼 적절한 문구도 준비를 안 해 놨다는 사실이 비난받아야 할 지점”이라며 “서울시가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지 않아놓고 과잉 대응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달랐다… 발 빠른 대처
일본 정부가 이날 전국순시(瞬時)경보시스템(J-ALERT)으로 보여준 대응은 서울시 등과는 달랐다. 일본은 오키나와(沖繩)현을 대상으로 긴급 대피 명령을 내렸다가 약 30분 만에 해제했다. NHK방송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6시30분 J-ALERT를 통해 오키나와현 주민들에게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안이나 지하로 피난하라”고 알렸다. 북한 미사일 때문에 발령된 경보임을 알렸고, 대피 장소(건물 안이나 지하)를 특정해 주민 혼란을 최소화했다. 이후 방송에서는 14초 동안 사이렌이 울렸다. ‘미사일 발사 정보, 미사일 발사 정보, 해당 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실내로 대피해 TV와 라디오를 켜라’는 음성을 반복했다.
이 알림은 TV 수상기 외에 해당 지역 야외에 설치된 스피커와 가정에 있는 호별 수신기에서도 울렸다. 일본 정부는 동시에 해당 지역에서 대피 방송을 실시했고 포털 사이트에 대응 요령을 게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했다. 일본은 오전 7시4분 “우리나라(일본)에 낙하하거나 상공을 통과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대피 명령을 해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오후 시청에서 브리핑을 열고 “많은 분께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며 “현장 실무자의 과잉 대응이었을 수는 있지만 오발령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