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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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위스키 전문가 [명욱의 술 인문학]

미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언급한다면 아마 두 명이 떠오르지 않나 싶다. 한 분은 노예 해방을 이루고 미국의 남북전쟁을 종식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전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한 대영제국을 물리친 미국의 초대 대통령,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지 워싱턴. 특히 조지 워싱턴은 1775년부터 1783년까지 벌어진 미국 독립전쟁에서는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활동, 미국이 승리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리고 프랑스와 우호조약을 맺어 프랑스를 동맹국으로 참전시켰으며, 이어 프랑스의 동맹국인 스페인까지 참전, 지브롤터해협을 포위하기도 했다. 결국 프랑스·미국 연합군은 요크타운 전투에서 항복을 받아냈고,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이 체결,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종전에 합의했다.

그렇다면 워싱턴은 언제 이러한 군사기술을 배울 수 있었을까? 흥미롭게도 그는 영국군 장교 출신이었다. 1754년부터 1763년까지 미대륙에서 일어난 당시 세계대전급 규모였던 ‘7년전쟁’의 일부인 프렌치 인디언 전쟁(French and Indian War)에서 영국군 대령으로 프랑스와의 전투에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7년전쟁 자체를 영국이 승리, 북미 식민지 및 인도에 대한 헤게모니를 가져가면서 프랑스는 식민지 확장 경쟁에서 밀리게 됐다. 이후 막대한 부채가 쌓인 프랑스 왕실은 미국 독립혁명까지 도와주면서 프랑스 대혁명을 초래하고 만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은 1990년대 히트를 한 영화 ‘라스트 모히칸’(The Last Of The Mohicans·1992)의 배경이기도 하다. 결국 워싱턴 입장에서는 영국군과 함께 싸운 경험이 후에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중요한 발판이 됐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직접 위스키 증류소를 운영할 정도로 위스키 전문가였다.

이렇게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 참여한 그는 군대에 술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위스키 전문가였다. 워싱턴은 럼주를 생산하기 위해 1770년대에 고향 땅 마운트 버논(Vemon·버지니아주 포토맥 강가에 있는 지역) 산에 증류기를 마련했고, 스코틀랜드 농장 매니저인 제임스 앤더슨에게 위스키 생산을 위해 호밀을 심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스키가 그의 기억에서 마냥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미국 독립전쟁으로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된 미국 정부는 증류주와 운송 비용에 과세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그런데 이 법은 소규모 증류업자에게는 갤런당으로, 대규모 증류업자에게는 정액으로 세금을 지불할 수 있도록 변형, 적용됐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업자가 유리한 상황. 결국 서부의 농부들에게 심한 반발을 불러왔고, 이것은 위스키 반란(Whiskey Rebellion)으로 이어졌다. 워싱턴은 주 민병대를 소집, 반란군들을 완전히 소탕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워싱턴은 대통령직을 떠난 1797년에 아예 위스키 증류소를 완공한다. 워싱턴의 증류소에서 만들어진 위스키 중 대표적인 제품은 호밀 60%, 옥수수 35%, 몰트 보리 5%로 이뤄진 것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과일을 사용해 브랜디를 만들기도 했다. 1799년 그가 죽는 1년 전까지 위스키로 상당한 이익을 냈고, 150갤런의 위스키를 저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게 위스키는 좋은 추억과 아픈 추억 두 가지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결국 술이란 이렇게 양면성이 있다는 것. 세상 모든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연세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교육 원장,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