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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해냈다”… 북한 위성 추락 전날, 한국은 미사일을 요격했다 [박수찬의 軍]

국가의 핵심 기술인 항공우주 분야에서 남북의 행보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오전 6시 27분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한 ‘천리마-1형’ 우주발사체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쐈다. 하지만 비행 도중 추진력을 잃고 서해에 추락했다. 결국 북한은 발사 2시간 30여분 만에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반면 한국은 지난달 25일 누리호 3차 발사에 성공한 데 이어 같은달 30일 장거리 지대공유도무기(L-SAM)의 탄도미사일 요격시험도 성공했다. 민간 우주로켓과 군사용 유도무기의 성능과 개발 능력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전날 평안북도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의 우주발사체 발사 모습.(왼쪽 사진)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실은 로켓 ‘천리마-1형’은 비정상적 비행 끝에 추락, 북한의 위성 발사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오른쪽은 지난달 30일 우리 군의 장거리지대공유도무기(L-SAM)가 충남 태안에서 시험발사되는 모습.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이날 L-SAM이 북한 탄도미사일을 가정한 표적탄을 공중에서 성공적으로 요격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국방부 제공

◆실패한 北 위성 발사…‘속도전’ 부작용 커지나

 

조급함. 지난달 31일 실패했던 ‘천리마-1형’ 우주발사체 발사 과정과 이후 발표에서 감지되는 북한의 속내다.

 

우주발사체 개발 직후 첫 발사는 기술적 위험부담이 크다. 궤도 진입 여부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의 소형 위성이나 위성모사체를 탑재, 시험발사 단계를 거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국 누리호도 첫 발사에선 1.5t짜리 위성모사체, 2차 발사에선 1.3t짜리 위성모사체와 큐브 위성 4기를 썼다. 

 

반면 북한은 신형 우주발사체 천리마-1형 첫 발사에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탑재했다. 시험발사 단계를 건너뛴 것이다.

 

북한이 발사 실패 직후 “신형 추진체계 안정성이 떨어지고 연료의 특성이 불안정한 것이 사고 원인”이라고 밝혔을 정도로 신뢰성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제작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군사정찰위성을 곧바로 탑재했다는 것은 그만큼 발사를 빨리해야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20일이 걸리는 준비 과정을 수일로 단축하고, 새로운 동창리 발사장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급하게 감행했다”고 밝혔다. 

 

미국 민간 위성업체 플래닛 랩스가 지난달 30일 촬영한 북한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의 새 발사대 모습. 콘크리트 패드가 선명하게 보인다. AP 통신

실제로 지난달 23일 촬영된 동창리의 새 발사장 위성사진에선 공사가 진행중이었지만, 31일에는 공사가 끝났다. 불과 7일 이내에 발사준비와 시행이 이뤄진 셈이다.

 

북한은 왜 이렇게 발사를 서둘렀을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북한 체제의 한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최근 수년간 순항미사일과 핵무인수중공격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다양한 종류의 신무기를 잇따라 과시해왔다. 

 

병정놀이에 푹 빠진 어린이가 충동적으로 자신의 장난감을 마구 꺼내 주변에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참모들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충성경쟁에 빠질 위험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8일 국가우주개발국을 현지지도하고 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김 위원장의 딸 주애도 함께 참석한 모습이 확인됐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복잡하게 뒤얽힌 국내 정세도 김 위원장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제재로 경제 사정이 뚜렷하게 개선될 조짐이 없는 상황에서 핵과 미사일을 앞세운 ‘군사강국의 위엄’은 김 위원장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업적이다. 

 

발사가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정치적으로는 이달 상순으로 예정된 8차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주요 국방 분야 성과로 선전, 정전협정 70주년까지 분위기를 이어가면서 내부 결속을 꾀할 수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2개 이상의 만화경-1호 위성을 탑재하거나 중량이 더 큰 위성을 쏘아올려 감시정찰능력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발사에 실패하면서 ‘위대한 수령’의 이미지에 상처가 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평양이 모든 역량을 총동원, 재발사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는 속도전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속도전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우주발사체 발사가 실패하면, 기술검증과 위성체 재제작 등에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추진체계와 연료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면, 난도는 더욱 높아진다.

 

우리 군 당국이 지난달 30일 서해상에서 발견한 북한 우주발사체 잔해의 모습. 합참 제공

관건은 2단 추진체다. 북한은 정상 작동한 1단 추진체 분리 이후 2단의 문제로 추락했다고 밝혔다.

 

2단 추진체는 알려진 것이 없다. 1·2단 분리 기술은 수차례의 ICBM과 로켓 발사를 통해 신뢰성을 확보했다. 

 

2단 추진체는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을 통해 시험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고각 발사 방식으로 진행된 ICBM 발사에서 정상각도로 쏠 우주발사체의 2단 추진체 성능 점검이 어느 정도 이뤄졌을지는 미지수다.

 

지상시험도 우주환경에서 실험을 해야 하지만 북한이 우주환경을 모사한 실험시설을 갖추고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점검 및 개선책 적용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는 조급함이 북한의 다음 행보를 꼬이게 만든 셈이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신규 발사체와 발사장, 일주일 이내의 짧은 준비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북한 군수공업부문의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경쟁은 이번 위성 발사 실패에 있어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L-SAM 요격 시험 성공…KAMD 강화 가까워져

 

북한의 위성 발사가 실패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30일, 한국은 미사일방어(KAMD)체계의 핵심인 장거리요격미사일(L-SAM)의 탄도미사일 요격시험에 성공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이날 L-SAM 종합 유도 비행시험을 언론에 처음 공개했다. 

 

L-SAM 요격탄이 발사대에서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번 시험은 지난해 11월 표적탄을 요격한 이후 진행된 네 번째 시험이었다. 약 200㎞ 거리를 두고 서해 남부 무인도에서 북한 탄도미사일을 모사한 표적탄을 발사, 서해 중부 해상 바지선에서 L-SAM 요격탄을 쏴서 표적탄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시험에서 요격탄은 표적탄의 추진기관을 정확히 격파했다. 앞서 진행된 세 차례 요격 시험에도 한 번을 제외하면 표적탄 직격에 성공했다.

 

국방부는 “L-SAM은 시험평가를 거쳐 내년에 개발 완료한 후 2025년 양산에 착수, 2020년대 후반 군에 배치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L-SAM 포대는 다기능레이더(MFR)와 교전통제소, 전원공급장치, 냉각장치, 항공기 요격탄·탄도미사일 요격탄 발사대로 구성되어 있다.

 

L-SAM의 ‘눈’ 역할을 하는 MFR은 항공기·탄도미사일 탐지 및 추적, 항공기 피아 식별 등 복합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기존 M-SAMⅡ 요격미사일 레이더의 핵심 기능을 강화해 탐지·추적거리가 M-SAMⅡ보다 4배 이상 높아졌다. 수백㎞ 거리에서 항공기를 탐지할 수 있다. 

 

탄도미사일 탐색 영역, 전자전대응 능력, 피아식별 능력도 대폭 향상됐다. 표적 형태에 최적화된 탐지 추적 알고리즘을 갖췄으며, 출력과 효율이 높은 반도체 모듈을 사용한다.

 

L-SAM 레이더는 X밴드를 쓰는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달리 S밴드 주파수를 쓴다. 사드는 탄도미사일 탐지에 유리한 X밴드를 사용해 정확도가 높다. S밴드는 항공기와 탄도미사일을 모두 탐지할 수 있지만, 정확도는 사드보다 떨어진다. 

 

L-SAM은 최신 능동전자주사(AESA)레이더를 사용, 수천개의 소자를 독립적으로 작동시키고 통합 운용하는 방식을 사용해 성능을 보완하고 가성비를 높였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사드는 레이더만 1조원이지만, L-SAM 레이더는 수천억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L-SAM 요격탄에 있는 직격비행체가 자세 및 위치제어를 위한 시험을 진행하며 화염을 뿜어내고 있다. 국방부 영상 캡쳐

L-SAM의 탄도미사일 요격탄은 추진기관(1·2단)과 직격비행체(KV)로 구성되어 있다. 1·2단은 초음속으로 비행한다. 

 

KV는 위치자세제어시스템(DACS)을 장착, 요격지점까지 자세를 제어하면서 궤도를 바꿔 비행하며 적 미사일을 적외선 탐색기로 포착해 격파한다.

 

요격탄은 매우 빠른 속도로 상승, 요격 예상지점에 신속하게 도달한다. 이는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 때문이다.

 

북한 평양 인근에서 서울로 스커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5분 이내에 낙탄할 수 있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보니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한국군이 요격할 기회가 거의 없다.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쏘면 탄도미사일 작전통제소(KTMO-CELL)에서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 등을 통해 탐지 및 추적을 하면서 각 요격체계와 지휘소 등과 정보를 공유한다. 

 

이후 L-SAM이 먼저 요격에 나선다. 요격탄은 고속으로 상승비행, 북한 탄도미사일이 수도권에 도달하기 전에 가능한 먼 거리와 높은 고도에서 격추를 시도한다. 

 

L-SAM이 요격에 실패하면 M-SAMⅡ와 패트리엇(PAC-3)이 작전에 나선다. 이를 통해 요격 횟수를 1회에서 2회로 늘려 지상 피해를 낮춘다. 이것이 바로 다층 미사일방어체계의 개념이다.

 

군은 L-SAM의 성능을 높여 극초음속 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L-SAMⅡ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요격 범위를 더욱 높여 다층 방어체계를 보다 촘촘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내년부터 2035년까지 2조7100억원을 들여 L-SAMⅡ를 개발한다. 

 

6월에 사업타당성조사가 시작될 L-SAMⅡ는 풀업기동(미사일이 정점 고도 도달 후 하강하다 다시 상승) 능력을 갖춘 북한 KN 계열 탄도미사일과 음속의 5배 이상으로 날아가며 활공 도중 선회비행을 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활공단계에서 요격한다.

 

적 미사일을 가능한 먼 거리에서 요격해 지상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개발되는 L-SAMⅡ는 고고도 요격미사일과 활공단계 요격미사일을 만든다. 이를 위해 기존 L-SAM 포대에 발사차량 2대를 추가한다. 

 

L-SAMⅡ에 쓰일 레이더는 L-SAM의 MFR을 성능개량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방산업계에서는 L-SAM 개발 과정에서 얻은 기술과 경험을 토대로 L-SAMⅡ의 요구성능에 부합하는 레이더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외에도 네트워크 능력을 강화해 다양한 경로로 수집되는 정보를 융합해 공유하고, 발사차량을 원격 제어하는 기술도 반영된다.

 

사드와 유사한 고도 40~150㎞에서 미사일을 파괴하는 고고도 요격미사일은 개발이 다소 용이할 전망이다. L-SAM 개발 일정이 기존 계획보다 앞당겨지면서 적용되지 못했던 최신 기술들이 있고, L-SAM 개발과정에서 식별된 개량 부분도 있다.

 

반면 활공단계 요격미사일은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아 탐색개발 단계를 거쳐야 한다. 특히 고도 30~40㎞에서 활공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요격하려면 매우 정밀한 자세제어가 필수다. 따라서 L-SAM에서 쓰는 위치자세제어시스템을 개량하는 등의 작업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