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표는 불법적인 요소 없이 코인게코(가상화폐 정보 사이트)에서 상위 300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밈(Meme)코인을 만드는 거야.”
지난달 30일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에 기자가 ‘코인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챗GPT는 “흥미로운 프로젝트인 것 같네요! 이를 위한 계획을 다음과 같이 세울 수 있습니다…”라며 멋진 사업계획서를 뚝딱 만들어냈다. 전반적인 가상화폐 발행 과정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챗GPT에 코딩을 요구했다. 검은 바탕화면에 하얀 글씨가 쏟아져 나왔다. 순식간에 챗GPT가 코인 발행을 위한 코드를 짠 것이다. 가상화폐를 발행하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블록체인 기술과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했다. 이젠 아니다. 코딩 까막눈인 기자도 코인을 만들 수 있었다. AI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AI는 미국 컴퓨터과학자 존 매카시가 67년 전 처음 언급했다. 1956년 미국 다트머스대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말한 ‘생각하는 기계’에 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고안한 용어다. 반세기 만에 AI는 우리를 대신해 코딩한다. 그리고 이젠 코인 시장까지 침투했다. 전문가들은 코인 발행 접근성을 높인 AI가 침체기에 빠진 가상화폐 시장에 훈풍을 불어넣을 거라 기대한다.
◆하루 만에 탄생한 터보토드
디지털 예술 실험가 레트 대시우드(닉네임 맨카인드)는 지난 4월 23일 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챗GPT가 이름짓고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가 그린 코인 발행하기. 그는 이날 트위터에 이 코인을 개발한 모든 과정을 문서화해 공유하겠다고 적었다. 맨카인드는 원래 대체불가능토큰(NFT) 디자인 업계에서 일했다. 그는 “꽤 오랫동안 이 업계에서 일해 왔지만, 올해 디지털 아트를 판매하려는 시도가 완전히 죽었다”며 “지금이야말로 탐색해 왔던 몇 가지 AI 도구를 사용해 볼 수 있는 적기”라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프로젝트 시작 계기를 말했다.
챗GPT로 코인을 발행하는 첫 번째 단계는 콘셉트 정하기다. 맨카인드는 챗GPT에 코인 이름 10개를 추천해 달라 했다. 이를 가지고 트위터에 투표를 부쳤다. 64.8%의 지지를 받은 ‘터보토드(Turbo Toad)’가 최종 이름이 됐다. ‘토드’는 두꺼비란 말이다.
다음 단계는 캐릭터 생성이다. 밈코인은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그림이나 영상 밈으로 만든 가상자산이라 이미지가 중요하다. 맨카인드는 미드저니에 터보토드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그려 달라 했다. 1분도 안 돼 두꺼비 캐릭터 4개가 완성됐다. 캐릭터 역시 트위터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됐다.
남은 절차는 코인 발행을 위한 코딩뿐. 맨카인드는 “아마도 이게 첫 번째 걸림돌이었을 것이다”라고 블록체인 전문 매체 엔에프티나우에 밝혔다. 코딩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챗GPT에 “솔리디티 코딩을 도와줘”라고 적었다. 솔리디티는 암호 화폐를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래밍 언어다.
맨카인드는 몇 시간 안 돼 챗GPT와 코딩에 성공했다. 그는 “챗GPT가 그 정도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매체에 전했다. 이렇게 AI의 도움으로 우주복을 입은 노란 두꺼비 터보토드가 하루 만에 코인 발행을 위한 비행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69달러(약 9만원)를 투자해 만든 터보토드는 약 2주 만에 시가총액 7000만달러(약 930억원)를 기록했다. 예상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 엔에프티나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논평가와 인플루언서들이 AI를 활용해 코인을 발행한 맨카인드의 아이디어를 칭찬한다”며 “맨카인드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AI가 바꿀 코인 시장 미래는
AI와 블록체인은 대표적인 차세대 기술 트렌드다. 이제 가상화폐 시장은 두 기술의 결합이 가져올 이점에 대해 주목한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 1월 AI가 가상화폐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에 가상화폐 시장을 붕괴시켰던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평가했는데, 그중에서도 ‘접근성 강화’에 주목했다. 포브스는 “현재 가상화폐 거래를 막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거래에 필요한 기술적 언어와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라면서 “AI는 암호 화폐에 대한 맞춤형 조언을 제공하거나 교육 자료를 선별해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사라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이미 만들어진 코인을 거래하는 트레이딩 개념에서 벗어나 가상자산 발행(ICO) 움직임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ICO엔 블록체인을 기획하고 만드는 역량이 필요하다. AI는 이를 손쉽게 도울 수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ICO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미국 등 신규 코인 발행이 가능한 국가에서는 AI가 가상화폐에 미칠 영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문형남 한국AI교육협회 회장은 지난달 30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코딩을 못 하는 사람이 AI를 통해 가상화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 여러 이유로 침체해 있는 가상화폐 시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AI가 여전히 가짜 정보를 퍼트리는 등 부족한 점이 많지만 코딩은 절대로 거짓말할 수 없다. 명확하게 답이 나오는 분야에 AI를 활용하는 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