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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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은 ‘은둔형 외톨이’인가 사이코패스인가? [미드나잇 이슈]

5년간 사회와 단절…‘은둔형 외톨이’ 공시생
‘호기심’에 살인 저지르고 뒷처리는 ‘허술’
사이코패스 특성 나타나지만 단정하긴 일러
경찰, 프로파일러 투입…정유정 “죄송하다”

‘부산 또래 살인사건’ 피의자 정유정(23) 신상이 공개된 1일,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두 번 놀랐다. 첫번째는 살인 동기가 ‘살인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었다는 것, 두번째는 그가 지극히 평범한 인상이었단 것이다.

 

이웃이 “집 밖에 잘 나오지 않는, 그저 얌전한 아이인 줄 알았다”고 묘사한 20대 공시생 여성은 책상에 앉아 시험 공부를 하는 대신 뒤틀린 살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범죄 계획을 세웠다.

 

그는 사회나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품은 ‘은둔형 외톨이’였을까, 그저 살인이 해보고 싶었던 사이코패스였을까. 아니면 둘 다일까.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이 2일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친구 한 명 없는 ‘은둔형 외톨이’

 

경찰에 따르면 정유정은 부모와 오래 전부터 떨어져 기초생활수급자인 할아버지와 지내왔다. 고교 졸업 이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5년간 직업 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정 할아버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달 10일이 필기시험이라 독서실에 다니며 공부하던 중이었다”고 손녀 일상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열심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경찰은 정유정이 범죄수사물에 심취해 관련 콘텐츠, 소설 등을 즐겨봤다고 밝혔다. 지난 2월부터는 ‘살인’, ‘시신 없는 살인’ 등을 검색한 것으로 드러나 실제 살인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유정 휴대전화에는 타인과 교류한 흔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

경찰은 “정유정은 평소 사회적 유대 관계가 전혀 없었고, 폐쇄적인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이웃들은 “마주쳐도 인사를 잘 안 할 정도로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손녀가 있는 것은 알았는데 몇 번 못봤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뤄 정유정은 5년간 바깥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타인과 교류 없이 범죄수사물 등에 심취해온 ‘은둔형 외톨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은둔형 외톨이는 집 안에 칩거한 채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보통 6개월 이상 사회적 접촉을 하지 않으면 은둔형 외톨이로 본다.

 

이들은 은둔하는 동안 자신만의 정신세계에 갇혀 사회나 특정 집단, 특정 인물에 대한 증오를 키우기도 하며 이를 종종 범죄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2015년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살해한 김일곤은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로 밝혀졌다. 2018년 자신의 허락 없이 집에 침대를 설치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누나를 살해한 김모씨도 군 제대 이후 세상과 단절돼 지낸 은둔형 외톨이였다.

지난 2022년 7월 8일 일본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활동을 하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67)를 총기로 저격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아래·41)가 범행 직후 제압당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일본에서는 1980년대부터 청년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범죄가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2008년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에서 20대 남성이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대표적인 히키코모리 범죄다.

 

지난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를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41) 역시 타인과 거의 교류를 하지 않은 히키코모리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살인 해보고 싶어서…” 사이코패스?

 

정유정이 ‘은둔형 외톨이’라도 그의 살인은 보통의 은둔형 외톨이형 범죄와는 다른 모습이 보인다. 

 

이전의 은둔형 외톨이 살인자들은 사회, 특정 집단, 가족 등에 대한 분노가 범죄 동기였는데, 정유정은 “그냥 직접 살인을 해보고 싶었다”고 밝힌 것이다.

 

살인 행위 자체를 위한 살인은 보통 ‘사이코패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범행 전후 폐쇄회로(CC)TV에 찍힌 정유정 모습이 너무나 태연했으며, 심지어 가벼워 보였다는 네티즌 지적도 그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2003∼2004년 총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2021년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두명을 살해한 강윤성 등은 살인 욕구가 있었고 이를 즐겼던 연쇄살인마들이었다.

 

유영철과 강윤성은 지금까지 경찰이 진행한 범죄자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역대 최고점인 38점, 두번째인 33점을 받았다.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징은 남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강윤성은 “내가 더 많이 죽이지 못한 게 한이 된다”며 전혀 반성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미디어에서는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두뇌가 매우 뛰어나고 치밀한 성격으로 묘사되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다. 인내심이 없어 충동이 생기면 일을 저지르지만 다른사람이 어떻게 볼 것인지 생각하지 못하고, 들킬 것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이나 범죄 뒤처리가 허술하다는 것이다.

온라인 과외 앱을 통해 처음 만난 또래 여성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정유정(23)이 2일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정유정은 3개월 전부터 살인을 계획했고 과외 앱에서 자신을 ‘중학생 학부모’라고 속여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피해자를 만나러 가면서 교복까지 구입해 입을 정도로 철저한 준비를 보였다. 

 

그런데 범행 뒤에는 한밤중에 피가 묻은 캐리어를 끌고 택시를 탄 뒤 인적이 드문 숲에서 내리는,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데다, 가방에 피해자 신분증을 그대로 뒀고 피해자 집에 자신의 지문도 남겼다.

 

일부러 들킬 계획이 아니었다면 범죄물에 심취해 3개월간 살인을 준비한 것치고 너무나 허술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정유정을 사이코패스로 단정 짓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정유정이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미안하다”고 한 것이다.

 

정유정은 2일 부산 금정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됐다. 모습을 드러낸 그는 살인 이유를 묻는 언론에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 실종 신고로 위장하려 한 점에 대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경찰은 정유정이 지난달 31일 조사에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한 바 있다.

 

죄의식을 갖지 않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은 보통 사과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어떤 감정과 의도로 사과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할아버지와 조용히 살던 20대 여성이 어떤 계기로 세상을 경악하게 만든 범죄자가 되었는지는 수사기관의 조사가 더 진행돼야 파악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정유정은 정신병 진단을 받은 적이 없고 전과도 없다”면서 “프로파일러 심리상담에 이어 관련 진술을 분석하고 있으며 사이코패스 여부도 검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