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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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예술과 함께하는 삶

앙드레 마송이 종이 위에 잉크 묻힌 펜을 끄적거렸다. 선들이 얽히고설킨 흔적만 있지 작가의 의도는 전혀 짐작이 안 간다. 그 어떤 구성 흔적도 없다. 무슨 형태를 만들어낸 것 같지도 않고, 색채 흔적마저 없으니 그야말로 삭막하고 혼란스럽다. 작가가 펜 가는 대로 따라간 낙서인 듯한데, 이렇게 성의 없는 것도 예술일까? 마송이 자동기술법으로 만든 초현실주의 드로잉이다.

앙드레 마송, ‘자동기술적 드로잉’(1924)

예술이란 아름답거나, 질서 잡힌 구성이거나, 조화로운 형태들만이 아니다. 사회를 향한 발언이기도 하고,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예술의 역할에 관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1차 세계대전 후 등장한 초현실주의가 특히 그랬다. 비극적인 큰 전쟁 후 폐허가 되어 버린 상황 속에서 예술가들은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초현실’ 세계를 나타내려 했다.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이들은 일상적 논리나 상식적인 사고를 벗어난 곳에서 찾으려 했다. 우연한 사건이나 행동, 꿈 또는 무의식의 세계같이 낯설고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들에 주목했다. 그런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주고, 절망적인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마송은 자신의 의도로부터 상상력을 철저히 해방시키는 창작을 구상했고, 자동기술법이란 방법을 창안했다. 마치 무의식에 의해 자신의 손이 움직여지는 것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면 마송의 자동기술적 드로잉은 그의 무의식을 표현한 것일까? 그렇게 볼 수는 없다. 미술사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나타내기 위한 수많은 미술 양식들이 있었다. 그중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새로운 양식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데 하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었겠는가. 작품 창작을 위한 하나의 새로운 방법이었고, 흥미롭고 색다른 이미지로 사람들이 절망적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을 뿐이다.

그림 한 장, 영화 한 편에 거는 기대가 이처럼 거창하지 않다면, 예술과 함께하는 우리 삶이 가치 있어질 것 같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