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방 지킨 요새 청주 상당산성/백제 역사 담긴 익산 미륵산성/가까이 두고 걷기 좋은 부산 금정산성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듯 검붉게 그을린 산성. 돌 하나마다 왕조가 생겨나고 사라진 수백 년의 역사가 깊게 새겨져 있다. 성을 지키던 병사들에게는 돌 하나가 목숨을 부지할 유일한 방패이고 갑옷이었을 테지. 호국영령을 기리는 6월,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산성으로 역사여행을 떠난다.
◆호서지방 지킨 요새 청주 상당산성
충북 청주시 상당산성 입구로 들어서니 공남문 아래 잔디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가슴이 시원하다. 맛있는 도시락을 가져와 피크닉하는 연인들, 반려견과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 풍경은 자칫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 있는 산성여행의 이미지를 단숨에 바꿔 놓는다. 사실 이곳은 주말이면 많은 이들이 여유로운 휴일을 보내는 청주의 사랑받는 쉼터다.
언덕길을 조금 걸어올라 공남문을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상당산성 여행이 시작된다. 공남문 천장에는 남쪽의 왜구를 물리치겠다는 염원을 담아 남쪽을 관장하는 주작을 그려 넣었다. 공남문을 통과하면 다시 내옹성이 등장한다. 적군이 성문을 뚫고 들어오더라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함정으로, 치밀하게 성을 축조한 점이 이채롭다. 공남문 보루에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며 방금 지나온 입구의 잔디밭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성을 방어하기 아주 좋은 반면, 적군들은 성을 함락하기 쉽지 않은 천혜의 요새였으리라.
상당산성은 청주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상당산이 머리에 띠를 두른 듯 또렷하게 보이는 성벽은 위기 때마다 청주 사람들의 울타리이자 파수꾼 역할을 했다. 상당산 능선을 따라 높이 4~5m의 성곽이 구불구불 이어지는데 둘레가 4.2㎞에 달한다. 남문∼서남암문∼서문∼동북암문∼동문∼동장대로 이어지는 성곽길을 모두 둘러보려면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성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와 청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원래 이곳에는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성 이름이 백제시대 청주목의 이름이던 상당현(上黨縣)에서 유래됐기 때문이다.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원정이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상당산성고금사적기’에는 궁예가 쌓았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또 ‘선조실록’에는 임진왜란 때 충청도병마절도사로 온 원균이 축조했다는 기록도 담겼다.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때 일부 고쳤고 1716년(숙종 42년) 사각으로 다듬은 화강암으로 석성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성안에는 5개의 연못과 3개의 사찰, 관청건물, 창고 등이 있었는데 현재는 공남문(남문), 미호문(서문), 진동문(동문)과 암문 2개, 치성 3개, 수구 3개가 남아 있다. 조선군이 훈련하던 동장대는 1992년에 복원됐다. 성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 성안의 전통한옥마을도 만난다. 상당산성은 옛 모습을 그대로 잘 간직해 최수종 주연의 드라마 ‘대조영’, 배용준 주연의 ‘태왕사신기’, 소지섭·신현준 주연의 ‘카인과 아벨’ 등 다양한 작품이 촬영됐다.
◆백제 역사 담긴 익산 미륵산성
‘백제의 왕궁’ 전북 익산은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등 다양한 유적을 만나는데 그중 하나가 금마면 신용리 미륵산성이다. 입구에서 울창한 대나무숲을 끼고 언덕을 10여분 오르면 한눈에도 위풍당당한 성벽이 학이 날개를 펼치듯 산등성이를 따라 양쪽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륵산성은 미륵사지의 배후에 있는 미륵산(해발고도 430m) 최정상부와 북쪽 봉우리(402m)를 잇는 능선이 서벽을 이룬다. 각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과 그 사이의 계곡부를 감싼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이다. 둘레는 1822m에 달하고 치성 10개, 동문지, 남문지, 옹성이 남아 있다. 오른쪽 성벽 안쪽에 계단을 따라 올라 성벽 위에 서면 산성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 따르면서 고조선 준왕(準王)이 쌓아 ‘기준성’으로도 불린다. 또 옛날에는 미륵산을 용화산로 불렀기에 ‘용화산성’이란 이름도 지녔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견훤을 쫓을 때 마성에서 신검의 항복을 받아냈는데 그 마성이 바로 미륵산성이다.
성문에는 방어에 유리하도록 작은 성을 따로 쌓았다. 성안에서 돌화살촉, 포석환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됐는데, 익산토성과 도토성에서 출토된 형태와 동일한 ‘금마저성(金馬渚城)’과 ‘금마군범요점(金馬郡凡窯店)’이라고 쓰인 기와도 발견됐다. 이에 미륵산성의 축조시기를 8세기 중·후반경으로 추정하지만 다수의 삼국시대(백제) 유물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미 백제 때 산성이 축조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미륵산성 인근 구룡마을은 5만㎡ 규모의 한강 이남 최대 대나무 군락지로 바람에 부대끼는 댓잎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기 좋다.
◆가까이 두고 걷기 좋은 부산 금정산성
금정산과 연결되는 부산 금정구 북문로의 금정산성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샛길을 포함해 산책로가 모두 100여개 달한다. 그만큼 다양한 길을 따라 가볍게 걷기 좋은 곳이다. 금정산 꼭대기에서 동남쪽·서남쪽 능선과 계곡을 따라 축성한 금정산성은 둘레 1만8845m로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성이다.
‘증보문헌비고’에 숙종 때인 1701~1703년에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그보다 앞서 현종 때인 1667년 통제사가 금정산성 보수를 건의했다는 기록이 있어 훨씬 오래전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고종 때 제작한 ‘금정산성진지도’에는 동서남북 성문과 본성, 중성의 망루 12곳이 등장한다.
동문에서 출발해 3망루와 4망루로 이어지는 길이 가장 인기 있는 코스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완만한 숲길에서 가파른 암벽까지 다채롭게 어우러져 걷는 재미가 있고 하늘을 가릴 정도로 나무가 울창해 초여름의 싱그러움도 만끽할 수 있다. 해발고도 620m 주능선에 있는 4망루에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지만 북쪽으로 의상봉, 서쪽으로 낙동강, 동쪽으로 금정구 시내가 펼쳐지는 풍경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다. 금강공원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15분 만에 금정산의 짙푸른 숲을 즐기며 해발 540m 높이 상부정류장에 도착한다. 여기서 1.5㎞ 거리의 남문 방향으로 완만한 흙길이 이어져 아이들도 걷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