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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두리안 외교’… “동남아를 포섭하라?"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미·중 갈등에 중국의 다각적 외교
‘과일의 왕’ 활용한 ‘농산물 외교’
베트남·필리핀 새 수출국 의구심
‘마음에 안 들면 취소로 보복할라’

두리안은 열대 과일의 지존으로 곧잘 불린다. ‘과일의 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아열대지방 이남에서 주로 생산된다. 동남아를 상징하는 과일이라고 할 수 있다.

두리안.

처음 맛을 접하는 사람들은 이를 표현하기마저 주저한다. 여러 표현법이 등장하지만, 대개 결론은 냄새와 맛이 ‘고약하다’는 것이다. 처음 맛이 그럴 뿐이지, 이내 고소하고 특유한 그 맛을 잊지 못하게 된다. 같은 열대과일인 파인애플 혹은 바나나는 처음이거나 여러 차례 접해도 맛이 같지만, 두리안은 그렇지 않다. 

 

◆ 중국의 ‘두리안 사랑’…태국산 절대 비중

 

중국인의 두리안 애정은 유별나다. 중국에서는 두리안이 거의 생산되지 않고 있지만, 소비 측면에서는 지난해 기준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이어 중국은 세계 3위이다. 두리안 소비 대국인 셈이다. 중국인들은 두리안 특유의 짙은 단맛을 좋아해 그대로 먹는 것을 좋아하고, 끓는 육수에 여러 재료를 담가 먹는 요리인 훠궈 등에도 두리안을 사용한다. 중국이 지난해 수입한 두리안은 40억3000만 달러였다. 2위인 체리 수입액 27억7000만 달러에 비해 훨씬 많았다.

 

중국은 두리안 수입선을 다양화하면서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수입선 다양화엔 외교적 고민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할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도 지난해와 올해 몇 차례 중국의 두리안 소비증가와 수입국 다변화와 관련된 기사를 내보냈다. 중국이 미·중 갈등 국면에서 두리안을 매개로 동남아를 상대하는 ‘두리안 외교’(durian diplomacy)에 주목한 것이다. 

태국 촌부리에 소재한 두리안 공장에서 농민들이 두리안을 손질하고 있다. 촌부리=신화통신·연합뉴스 

두리안은 액수 측면에서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농산물이다. 국제시장에서 두리안 수출 강자는 태국이다. 태국이 두리안 수출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태국 상무부에 따르면 태국의 지난해 두리안 수출액은 32억1942만 달러로 한화로 4조원이 훌쩍 넘는다. 수입처는 중국, 홍콩, 대만 등지인데 중국 본토의 수입물량이 절대적이다.

 

태국은 최근까지도 중국에 두리안을 사실상 독점 공급했다. 중국의 두리안 수입량은 지난해 82만4000톤이 넘었다. 이보다 5년 전인 2017년 22만톤에 비하면 거의 4배가 된 것이다. 중국은 선박과 철도, 자동차 등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동남아산 두리안을 수입하고 있는데, 최근엔 중국 쿤밍∼라오스 비엔티안 고속철도 노선도 활용되고 있다. 소비자에게 도달되는 기간이 단축돼 신선도 유지와 시장 접근 측면에서 강점이 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리안 등 동남아산 농산물의 중국 수출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는 중국·라오스 국경 고속열차가 철로를 달리고 있다. 비안티안=신화통신·연합뉴스

◆ 中, 베트남·필리핀 등  수입 다변화

 

태국이 중국에 두리안 시장을 독점 공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무역협정에 따라 2003년부터 태국산 두리안을 수입했으며, 2011년부터는 말레이시아에서도 냉동 두리안을 수입하고 있다. 최근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따라 가입국 사이에 농산물 개방 품목과 무관세 비중이 커지고 있다. 두리안도 개방 품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RCEP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 등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에서 지난해 1월부터 발효된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중국은 RCEP 발효 등과 궤를 함께하면서 베트남과 필리핀에도 일정 요건 아래 두리안 수출을 허가했다. 향후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도 일정 요건을 채우면 중국에 두리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필리핀은 올해 1월부터 두리안을 중국에 공급했다. 특히 베트남산에 대해서는 운송 거리가 그다지 길지 않고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설명이 나오기도 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각기 20년, 10년 넘게 중국 시장에서 공고히 해왔던 입지를 베트남과 필리핀에 일부 내주게 한 것이다.

태국인이 방콕의 농산물 시장에서 두리안을 고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두리안을 취급하는 중국 도매업자는 “베트남산 두리안은 태국산에 비해 20%가량 가격이 저렴하며, 하루 이틀이면 소비자에게 도달된다”고 밝혔다. 중국 물류업체의 한 책임자는 SCMP에 “베트남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열차의 주요 품종이 이전엔 해산물이었지만, 최근엔 두리안이 차지하고 있다”며 “두리안 수입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수출이 활기를 보이면서 베트남 일부 농촌에는 중국인들이 두리안 생산에 투자액을 늘리고 있다는 뉴스도 전해졌다. 베트남뉴스는 중국에 수출되는 두리안은 최소 3kg이 넘어야 하며, 여러 규정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보도했다.

 

◆ 中의 ‘두리안 외교’ vs 마냥 반기지 않은 베트남

 

지난해 중국의 베트남산 두리안 시장 개방 조치가 알려지자 SCMP는 베트남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두리안 외교’를 언급했다. 중국의 두리안 시장 개방은 결국 베트남의 중국 의존도를 높이고, 중국의 베트남 영향력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싱크탱크인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ISEAS-Ishak)의 르 홍 힙 연구원은 “중국에 상품을 팔면 팔수록 베트남 정부는 대중 관계 악화를 방지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베트남에서는 중국이 국경 무역을 전략적 영향력 행사의 도구로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상존해 있다”고 전했다.

 

이런 차원에서 베트남으로서는 두리안 수출을 단순한 농산물 판로 확대 측면으로만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중국의 수입 결정 시기도 절묘했다. 베트남은 중국의 수입 조치가 취해졌을 무렵 미국 주도의 경제 협력체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 참여를 선언한 상태였다. 미국의 중국 견제에 베트남이 발을 들여놓을 여지를 보이자, 중국이 움직였다는 분석이 제기된 것은 이 때문이다.

베트남 노동자들이 판매용 두리안을 포장하고 있다. 바오모이닷컴 캡처

필리핀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으로 취임해 예상과 달리 미국에 다소 우호적인 행보를 펼치던 때였다. 필리핀은 중국에 두리안을 수출한 다음달인 2월 자국의 군사기지에 대한 미국의 사용을 허가하는 등 중국의 예상 범위 밖에서 움직였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중국의 두리안 수입을 환영하면서도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 언론은 최근 “(하노이) 중앙정부가 지나친 두리안 생산을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정부는 두리안 과잉공급으로 농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았다. 중국이 정치적인 의도로 농산물 수입을 갑자기 중단시킬 수도 있다는 게 베트남 현지의 우려다. 두리안 수출에 중국에 대한 과대 의존을 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은 자국의 광범위한 소비시장을 무기로 마음에 들지 않는 국가를 향해 종종 보복 조치를 취해 왔다. 일례로 2012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필리핀과 관계가 험악해지자, 필리핀산 바나나에서 해충이 발견됐다며 검역을 강화했다. 이후 필리핀의 대중 바나나 수출은 급감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