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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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세 때 1년에 8㎝ 이상 갑자기 자라면 성조숙증 의심”

채현욱 강남세브란스 소아청소년과 교수

고환·가슴 커져… 여아 발병률 남아의 9배↑
이른 성호르몬 분비, 사춘기 후까지 영향
발생 원인 비만·식품 속 유해물 등 복합적
뇌 속여 호르몬 억제하는 치료 98% 효과
발병 빠르면 성장호르몬 처방 병행하기도

“성조숙증은 만 8세(남아는 9세) 이전에 유방 멍울이 잡히거나 고환이 커지는 등 2차 성징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합니다. 7∼8세 언저리에 갑자기 1년에 8㎝ 이상 키가 크는 것도 성조숙증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성조숙증으로 인한 이른 성호르몬 분비는 키 성장 시기뿐 아니라 평생의 건강과도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세심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채현욱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난 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조숙증을 ‘건강한 성장과 발달’에 초점을 맞춰 접근할 것을 강조했다. 성조숙증에 대한 관심이 최근 늘어났지만 대부분 ‘키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춘기의 중요성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키가 중요한 ‘스펙’ 중 하나가 되면서 성조숙증에 대한 관심이 높다. 채현욱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성조숙증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며 “성조숙증이 ‘저신장’으로 연결되는 것은 빨리 온 사춘기로 급격한 성장기가 이른 나이에 나타난 이후 성장판이 닫히면서 성장의 기간과 폭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성조숙증 진단과 치료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30년 정도 전입니다. 성호르몬 조기 노출에 따른 암 발병 위험성 등은 아직 많은 부분에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난소와 뇌에 생긴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조숙증 대부분은 ‘특발성’, 즉 원인 불명입니다. 특발성은 비만 등 과잉 영양과 환경 호르몬, 식품 속 유해물 등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성조숙증 환자 증가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남아보다 여아의 발병이 9∼10배 더 많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조숙증으로 치료받은 환자 수는 2017년 9만5524명에서 2021년 16만6645명으로 74.5% 급증했다. 실제 유병률이 증가하기도 했지만, 키 성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진단을 받는 환자 수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이런 높은 관심으로 채 교수의 진료 예약은 벌써 2년치가 꽉 찼다.

성조숙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부에서는 닭고기, 콩 등 식품이 성조숙증 ‘유발 물질’로 지목되기도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특히 여자아이에게는 콩을 먹이지 말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채 교수는 “특정 단일 음식이 성조숙증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은 전혀 없다”며 “가장 기본이 되는 ‘골고루 잘’ 먹는 건강한 영양 섭취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이후 성장판이 닫힐 때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학생은 평균 25㎝, 남학생은 28㎝ 정도 급격히 키가 큽니다. 그 이전에는 보통 1년에 4∼6㎝ 정도 성장하죠. 성조숙증으로 만 12세 정도에 시작되는 사춘기가 만 8세 이전으로 당겨지면 8∼12세 사이 성장 기간이 사라지고, 사춘기 기간 성장 폭 자체도 줄어듭니다. 성장 기간과 폭에서 모두 ‘손해’가 생기는 셈이죠.”

그래서 성조숙증 치료는 과도한 ‘성호르몬 분비 억제’에 맞춰지게 된다. 치료 시 98%에서 억제 효과가 있고, 부작용은 거의 없다. 성호르몬 ‘억제’로 불리지만 사실상 성선자극호르몬 유사체를 넣어줘 뇌가 ‘성호르몬이 많은 상태니 분비를 줄이자’는 판단을 하게 만드는, 말하자면 뇌를 살짝 속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조기 진단·치료 시 나왔던 가슴이 다시 들어가거나 고환의 크기가 줄어들기도 한다. 그렇게 사춘기를 뒤로 늦추며 시기에 맞는 ‘건강한 발달’을 돕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성조숙증 치료를 받았더니 키가 오히려 안 컸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채 교수는 “성조숙증으로 8㎝ 이상 크던 아이가 치료를 받으면서 나이에 맞는 성장 속도로 돌아가면서 오히려 키 크는 속도가 줄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나 치료하지 않으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반짝 크고, 성인이 돼서는 작은 키로 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조숙증이 시작된 시기와 진행 속도 모두 빠른 경우라면 성장 호르몬 ‘병합 치료’를 받게 된다. 성조숙증의 경우 보통 뼈나이(골연령)가 정상적인 나이보다 2∼3년 이상 빠른데, 이미 높아진 뼈나이를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 이 경우 성호르몬 억제로 사춘기 시기를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키 손실’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성장 호르몬 치료를 고려하는 것이다. 성장 호르몬 치료는 통상 2년 이상 치료 시 5㎝가량의 추가 성장을 기대한다.

성호르몬 치료는 ‘빨리 온 사춘기’를 뒤로 미루는 작업인 만큼 정상적인 사춘기 나이로 언급되는 만 11∼12세가 되면 치료를 끊게 된다. 키 성장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만 11∼12세 이후 성호르몬 치료와 불필요한 성장 호르몬 치료를 계속하려는 경우도 있다. 채 교수는 이런 과도한 치료를 경계했다. “혈당이 오르거나 갑상선 호르몬 변화 등 성장 호르몬으로 인한 부작용이 있을뿐더러 성장 호르몬 치료를 받는다고 모든 사람이 다 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성조숙증 치료의 목적은 성호르몬의 이른 노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해 아이들의 평균적인,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을 돕는 데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