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3일간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2008년(당시에는 G8), 2021년에 이어 세번째로 참관국(옵서버) 초청을 받았다. 특히 올해는 참관국 자격을 뛰어넘는 성과와 역할로 G7 회원국과 주요 참가국인 EU(유럽연합) 못지않게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G7 폐막 직후 2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의 정의롭고 책임 있는 리더십은 국제사회에서 존중받고 있다”며 “안보와 안정적 공급망을 위해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러한 역할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윤 대통령은 이번 G7을 전후로 글로벌 중추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의 선점을 위해 이들 산업의 핵심 원자재인 리튬·니켈·코발트를 보유한 캐나다·인도네시아·베트남·호주와 양자 회담을 했고, 이를 제조·가공하는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강국 일본·독일과도 연달아 회담하며 경제와 안보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회담을 통해 반도체와 배터리뿐 아니라 바이오, 항공, 우주, 원자력발전 등 한국이 기술 우위를 가졌거나 세계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첨단 분야에 대해서도 G7 국가와 보다 넓은 협력관계를 구축했다는 점도 주목을 받았다.
또 대내외 불확실성 해소와 투자여건 개선을 위한 안보 공조도 한층 강화됐다. 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지난달 2차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셔틀 외교’가 복원됐고,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 발표한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협의그룹(NCG) 구성도 합의했다.
또 이번 여름으로 예고된 한·미·일 3국 정상회담 역시 다자외교 무대가 아닌 단독 개최를 추진하며 ‘새로운 수준의 공조’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1일 G7 정상회담장에서 3국 정상이 만났을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양국 정상을 곧 워싱턴에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3국의 협력은 북한 미사일과 중국에 대한 견제, 대만 해협·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인식 공유라는 공통된 주제가 있지만, 핵심 내용 중 또다른 하나는 첨단기술 공급망 협력 강화다.
앞서 지난 2월 한국은 미국이 주재한 반도체 화상회의에 참석했었다. 이른바 ‘칩4동맹’ 회의였는데, 칩4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한국·일본·대만에 제안한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다.
당초 한국은 중국 현지에 공장을 가진 국내 기업들의 입장과 주요 반도체 수출국인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칩4 참여에 신중했지만,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일본에 대규모 신공장을 건설하고, 삼성전자 역시 약 3000억원을 투자해 일본에 첨단 반도체 디바이스 시제품 라인을 만드는 등 관련국 간 협력이 가시화되면서 공조에 참여하게 됐다. 미국 내 반도체산업육성법(CHIPS and Science Act) 역시 향후 우리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알려지면서 칩4동맹이 구체화됐다.
전기자동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핵심 원자재 수급 및 공급망을 둘러싼 ‘전쟁’이 시작됐고, 반도체 분야는 이미 각국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먼저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제정해 전 세계 배터리·전기차·재생 에너지·수소 관련 기업들을 자국 내로 유치하기 위해 강력한 압박과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EU 역시 핵심원자재법(CRMA)을 내세워 유럽 중심의 공급망 플랫폼 구축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기술시장, EU 및 중국의 수요시장에 협력과 대응 모두 해야 하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이 같은 전쟁의 한가운데 서 있는 셈이다.
특히 배터리와 2차 전지, 반도체 등을 생산·수출하는 우리 입장은 주요국의 첨예한 이익에 맞물려 있는데, 때마침 중국은 G7이 끝난 직후인 지난달 21일 미국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제품을 제재했고, 미국은 그 즉시 한국이 그 빈자리를 채워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지만, 이렇게 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하면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의 기존 평가는 족쇄나 규제가 될까 우려된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친환경 노력을 ‘그린 워싱’이라 지적하며, 아예 한발도 못 움직이게 할까 걱정된다. 지금 한국의 ESG 흐름이 우려되는 건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과도한 여론몰이 방식이 난무하고 있어서다.
안보 없이는 경제가 없고, 경제 없이는 국민과 기업이 있을 수 없다. 공급망 및 기술, 경제 전쟁에서 우리 정부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민·관이 현재와 미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 직전 정부처럼 기업을 잠식하는 정책을 다시 취해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환상의 호흡을 맞춰나가기 위해, 그리고 이 호흡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ESG 역시 또 하나의 규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UN SDGs 협회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 협의 지위 기구, 유엔환경계획 옵서버 기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