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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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U-20 월드컵 김은중호(號)의 쾌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한국 대표팀을 이끄는 김은중(44) 감독의 선수 시절 별명은 ‘샤프’다. 날카롭고 예리하다는 뜻이다. 문전에서 감각적인 침투와 높은 골 결정력을 보이고 재치 있는 패스로 기회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그는 2010년 K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등 특급 공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이뤄낸 성취여서 더욱 빛났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공에 왼쪽 눈을 맞아 사실상 실명했다. 치료를 제때 하지 못해 서서히 시력이 떨어졌고 프로 입문 후에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이를 자극제로 삼아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다. 그래서 일본 J리그의 베갈타 센다이에서 활약했을 때는 현지 팬들이 그를 ‘독안룡(獨眼龍)’이라고 불렀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무사라는 뜻의 독안룡은 일본 전국시대(센고쿠시대) 센다이 지방의 영주였던 다테 마사무네의 별칭이다.

김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U-20 월드컵 4강에 올랐다. 한국은 8강전에서 강호 나이지리아를 연장 승부 끝에 1-0으로 눌렀다. 한국은 1983년 멕시코(4위)와 2019년 폴란드 대회(준우승)에 이어 3번째 4강 진출을 달성했다. 한국 축구 역사를 통틀어 FIFA 주관 메이저 대회에서 2회 연속 4강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감독의 별명대로 그가 조련한 스무 살 태극 전사들은 날카롭고 예리했다. 점유율과 슈팅 수에서는 밀렸지만 뛰어난 수비로 상대 공격을 차단했고,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김은중호에 대한 기대감이 큰 편은 아니었다. 2019년 이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대표팀에는 이강인이라는 슈퍼스타가 있었지만, 이번 대표팀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없기 때문이다. 다수의 선수가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아 실전 감각이 떨어졌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선수들을 다독이고 독려했다. 대표팀은 조별 리그에서 우승 후보 프랑스를 꺾더니, 16강에서 에콰도르를 제압한 데 이어 8강에서 나이지리아까지 연파했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에 이어 지도자로서도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 김은중호의 쾌거에 박수를 보낸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