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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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줄게” 헬퍼 가장한 어둠의 손길… 온라인 ‘멘헤라 사냥’ 활개 [심층기획-취약한 여성 노리는 사회 ①]

SNS·우울증갤러리 등 성폭력 피해 확산

갈곳 없는 가출 여성 청소년에 접근
메신저로 “돈 필요하냐, 재워줄게” 유인
숙식 등 미끼 성폭행… 범죄피해 잇따라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여성들만 골라
가벼운 만남 반복한 뒤 본색 드러내

피해자들 정신적 문제로 더욱 위축
기관들도 그루밍성범죄 이해도 낮아
지난 4월 말 서울 강남에서 10대 여학생이 추락해 숨진 사건의 배경으로 디시인사이드 ‘우울증 갤러리’가 지목되며 일명 ‘울갤’은 단숨에 유명해졌다. 이곳에서 정서적으로 취약한 여성,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집단 성폭력·성착취 및 자살 조장·방조가 계속돼 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울증 갤러리가 남긴 충격파에 사회는 경악했지만 적잖은 여성들에게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심리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여성의 약한 고리를 악용해 성적으로 착취하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부조리가 이미 만연해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들은 오히려 울갤 사태가 터지고 난 뒤에야 반응하는 사회에 씁쓸해했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 청소년에 쏟아지는 어두운 손길

 

탈가정 청소년인 김은지(15)양은 4살 때부터 아동학대에 시달리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지난해 집을 나왔다. 보호자에게 더는 보호받을 수 없었던 그는 가정밖청소년이 머무는 ‘쉼터’를 전전하고 있다.

 

은지양이 경험한 세상은 같은 탈가정 청소년이더라도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다. 남성 청소년이 배달 일 등을 하며 임시 쉼터를 오갈 때 여성 청소년에게는 곧장 ‘헬퍼’(숙식을 비공식적으로 돕는 사람)라 칭하는 남성들이 접근해왔다. 이들은 명칭 그대로 처음엔 잘 도와주다가 청소년이 마음을 놓거나 고마움을 느낄 때쯤 결국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성기 사진을 찍어 올리면 뭔가 해주겠다는 식으로 돌변하곤 했다. 

 

트위터에 “갈 곳이 없다”는 글을 올렸던 은지양도 “돈 필요하냐. 도와주겠다”던 사람이 “얼굴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한 경험을 얘기했다. 이는 헬퍼가 여학생들에게 접근하는 방식 중 하나다.  

 

실제로 그의 또래 여성 중에는 헬퍼를 만나 성폭력을 당하거나 성매매 요구에 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메신저 채팅방을 만든 지 10분도 안 돼서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나이대 남성 몇십 명에게서 모두 연락이 왔다고 한다. “취약한 여성을 검색하며 찾아내서 문자를 보내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고 은지양은 말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도 달리 방도가 없으니 “안 좋을 걸 알면서도 수락하게 된다”고 했다.

 

왜 이들은 헬퍼의 수상한 제안을 받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쉼터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이 또한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은지양은 쉼터의 지나친 생활 통제 방식과 청소년의 자유를 억압하는 측면을 이유로 들었다. 외출하려면 미리 허락을 받아야 가능하고, 쉼터 운영 실적을 위한 프로그램 참여 등을 강요받는 일 등이 그렇다는 것이다. 관리상 편의를 위해 방문이 닫히지 않게 해 둬 CCTV로 방 안이 보이게 해놓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다.

◆탈가정·우울한 10대 여성 내모는 사회

 

무엇보다 “어른들이 청소년의 독립성을 인정해주지 않고 과하게 통제·관리하는 것이 역으로 청소년의 자립을 가로막기도 한다”는 그의 말은 뼈아프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빼앗기고, 무력해진 청소년들은 착취가 분명한 때조차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따르기 더 쉬워진다”는 지적이다.

 

더이상 갈곳 없는 청소년을 상대로 욕설이나 불쾌한 발언, 성희롱을 일삼는 쉼터 교사들도 존재한다. 남자 선생님이 여학생 몸을 만지며 “예쁘다”고 하는 등 불쾌한 일을 겪어도 쉼터에 들어온 청소년에게 참는 것 말고 선택지는 거의 없다. 대부분 쉼터 정원이 꽉 차 있기도 해 다른 곳에 가기도 힘들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저지르는 짓이라는 걸 교사도 청소년도 모르지 않는다.

 

우울증 갤러리 투신 사건을 접한 사회의 반응에 대해서도 은지양은 “그동안 관심 갖지 않다가 갑자기 그렇게 충격받을 일인가 싶다”며 “사망한 여성이 사람들의 이야깃거리로만 소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우울한 여성 청소년을 이중으로 방치하며 범죄에 노출되게 만든다. 신경정신과를 가야 하는 청소년들이 보호자 없이는 사실상 진료를 거부당하고 있다. 이런 한계로 인해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우울증이 악화한다.

 

도움이 필요한 여성 청소년을 쉼터가 오히려 내쫓기도 한다. 은지양은 “정신적 스트레스로 신체에 증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고 했더니 쉼터측이 “단체생활이 힘들겠다”며 받아주지 않았던 경험을 털어놨다. 자해를 하는 등 치료가 시급한 경우에도 쉼터에 들어올 때 작성했던 ‘생명존중서약서’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봐 퇴소를 시킬 뿐이었다.

 

이처럼 여성 청소년을 거리로 내몰고 아동 성착취까지 발생하게 하는 배경에는 여성이라는 취약성을 해소하기는커녕 이로 인한 피해를 방치하기까지 하는 사회의 무관심이 있다. 학대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구조, 청소년에게 ‘집다운 집’을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 등이 결합하면 상황은 더 빠르게 악화된다.

 

“연애관계였다. 여학생들이 먼저 접근했다” 같은 가해자들의 익숙한 변명에 비해 여성들이 안전하지 못한 공간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러한 구조는 잘 조명되지 않는다.

◆연령대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착취의 늪’

 

문제는 이것이 우울증 갤러리만의 문제도 아니고, 미성년자 여성만 겪는 일도 아니라는 점이다. 성인 여성이더라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신조어로 ‘멘헤라(멘탈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이는 사람) 사냥’이라 부르는 여성 착취는 온라인 세상 여기저기서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약 6년간 SNS에서 ‘정병계’(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의 계정)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30대 여성 이모씨는 이에 대해 “이 동네의 사정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게 아닌가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분노할 기력도 없다”는 이씨는 “SNS에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여성에게 친근하게 접근한 뒤 결국 가벼운 만남을 반복하는 남성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져 있던 시기에 ‘내 편이 없다’고 느끼던 이씨에게 SNS는 자신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남성들을 만날 통로였다. 이들은 하나 같이 “SNS로 누굴 만난 적은 없다”거나 “만나서 밥먹고 카페나 가자”며 경계심을 늦춘 뒤 마지막엔 “그래서 오늘 집에 들어갈 거냐”며 본색을 드러냈다.

 

이제는 이것이 ‘전형적인 수법’임을 안다는 이씨는 “정신 건강이 좋아지자 그런 남자들 연락이 귀신 같이 끊겼다”고 말했다. 

 

외롭거나 스스로가 쓸모없다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 정병계 여성은 이 사회에서 여성이 가장 쉽게 주목받을 수 있는 길을 택한다. 몸 사진을 올려 남성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접근해오는 이들에게 마음도 금방 열게 된다. 

 

이씨가 소개한 문제적 남성들의 단골 멘트는 이런 것들이 있다.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눈길이 갔어요." 

 

"저는 여기서 누굴 만나 본 적은 없어요. (당신이 처음이에요)"

 

"전혀 생각 없이 나왔는데 얘기하다 보니 (스킨십) 하고 싶어요."

 

그밖에는 여성이 해낸 사소한 성취나 자랑거리에 "되게 잘했네요!" 라며 격려하며 반응해주기 등이 있다.

 

그렇게 친밀감을 쌓다가 우울하다는 글을 올리면 곧장 다음 단계 '작업'이 들어간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런 남성들은 우울한 얘기에 확실히 더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공을 들였다. 메신저나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개인적인 연락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같은 여성들은 '진짜 위로'를 하는 게 목적이라 공개된 공간에서 답글을 남긴다면, 남성들은 꼭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가서 흔적이 남지 않는 대화를 하려고 들었다.

 

이런 경험을 해 온 이씨 역시 우울증 갤러리 사태는 기존에 보던 일들의 연장 선상으로 느껴졌을 법 하다. 다만 “남자들끼리 커뮤니티 내 여성들 정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더 악질적인 것 같다”며 “사건을 접하고 피해 여성들이 너무 안 됐는데,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당장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고 이씨는 말했다.

 

그는 요즘 여성들이 “정말 관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며 “감정적으로 취약할 때 아무도 의지할 수 없고, 경찰이나 각종 기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없어 힘든 경험을 믿고 얘기할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분명한 범죄에 대해서도 너무 가볍게 인식하고, 양형도 적어 ‘사회에 대한 불신’은 최고조에 달한 지 오래다. 

 

이씨와 같은 여성들에게 울갤 사태는 ‘결국 내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하는 사회의 비극’ 정도로 인식되는 실정이다.

 

<관련 기사>

 

[심층기획-취약한 여성 노리는 사회]

 

①“도와줄게” 헬퍼 가장한 어둠의 손길… 온라인 ‘멘헤라 사냥’ 활개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5512879

 

②“약자의 피해는 지워지고 각색된다…피해 인지도 힘든 지경”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7500630

 

③수십개 실시간 ‘벗방’, 시청자 수천명…성착취 온상으로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5512878

 

④“벗방 시청자는 숨은 ‘주요 공모자’다” 벗방피해자공동지원단 일문일답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607523605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