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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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우크라이나 댐 폭파

1943년 영국 공군은 독일 루르강 유역의 군수 공장들을 무력화할 계획을 세운다. 군수 공장들은 계곡에 위치한 데다 대공포의 엄호를 받고 있어 폭격이 불가능했다. 고심 끝에 공장 지대 상류에 있는 댐을 폭파하기로 했다. 문제는 정확한 폭격을 하려면 폭격기가 저공비행해야 한다는 것. 영국은 베테랑 조종사들을 규합하고 ‘617 폭격 대대’를 조직해 훈련에 돌입한다. 617 폭격 대대는 댐 폭파에는 성공하지만 폭격기 19대 중 9대가 추락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영국 영화 ‘댐 버스터’(1954)는 이 실화를 다루고 있다.

물을 다량으로 모아서 적을 공격하는 전술인 수공(水攻)은 전쟁사에 종종 등장한다. 엄청난 양의 물이 적을 휩쓸어 죄다 물귀신으로 만드는 장면을 상상하기 쉽지만, 방죽으로 물을 막아 놓았다가 터트려 적군이 놀라 우왕좌왕할 때 기병으로 공격하는 전술이 주로 사용됐다.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이 이런 식으로 전개됐다. 중국의 조조와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수공에 능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는 수공에 대한 악몽도 있다. 1986년 10월 정부는 북한이 1988 서울 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수도권을 물바다로 만들 수 있는 금강산댐을 건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응할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이 나왔고 전국적인 반공 열기 속에 성금 운동이 펼쳐졌다. 그러나 김영삼정부 들어 실시된 당시 안기부 감사 결과 이런 위협이 터무니없이 과장된 것으로 판명됐다.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의 노바 카호우카댐이 폭파돼 인근 지역에 홍수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는 “댐 파괴는 러시아의 생태 집단학살로 약 1만6000명이 위험에 처하게 됐다”며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개입을 촉구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비밀 파괴 공작으로 댐이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서방 정보 기관들은 러시아군이 댐을 파괴했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이번 홍수로 우크라이나군의 진격 경로가 차단된 데다 러시아는 최근 댐의 저수 수위를 높여 왔기 때문이다. 제네바협약은 의도적인 댐 폭파를 전쟁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댐 폭파범을 찾아내 그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박창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