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신문 기사가 필자의 시선을 끌었다. 충북 단양군 단성면사무소에 올 들어 첫 출생신고 문의가 들어오자 담당 공무원이 절차를 몰라 허둥댔다는 내용이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태어난 아이가 고작 2명이라고 한다. 단양군의 다른 마을은 2년 만에 아이울음 소리를 듣고 동네 곳곳에 축하 현수막까지 내걸고 잔치까지 벌였다고 한다.
아이 울음 소리를 듣기 어려운 시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 1970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다. 국가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합계출산율 2.1명에 턱없이 모자란다. 2013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꼴찌다. 2023년 6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인구 재앙을 경고하는 말들은 넘쳐난다. 2006년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지구상의 최우선 소멸 국가 1호’로 한국을 꼽았다. 그나마 당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3명이었다. 정부가 막대한 국가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2009년 7월 당시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북핵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저출산이다. 국가 준(準)비상사태”라고까지 했다.
실제 그럴까. 전통적으로 한국 신용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 요소는 북핵(北核) 등 지정학적 리스크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는 2012년 9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A-로 올린 이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 역시 2015년과 2016년 8월 이후 신용등급 변동이 없다. 하지만 무디스는 ‘2023 한국 신용등급평가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성장의 장기 리스크는 인구 압력 심화”라고 경고했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2020∼2040년 24%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저출산 한국은 집단자살사회”라고 규정했다. 섬뜩하다.
소아과 오픈런, 교육대 정원 감소와 임용 절벽, 황혼 육아 등 각종 말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교집합은 ‘저출산’이다. 낮은 의료수가와 의대생들의 필수 진료 기피 등이 소아과 대란을 낳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출생률 저하일 것이다. 환자가 줄었으니 파이가 작아진 것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들이 문을 닫는다’고 아우성인데 학생이 없으니 대학이라고 어쩔 도리가 없다. 정부는 교원 정원을 줄인다고 난리법석이고, 임용시험 합격자는 교단에 설 날만 학수고대한다.
행복한 노년은 언감생심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21년 기준 한국에서 18세까지 자녀를 키우는 비용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3억6500만원)에 달한다고 했다. 비교 대상 14개국 가운데 압도적 1위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다 보니 노인이 손자의 육아를 떠맡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헛돌고 있다. 인구 재앙은 예상을 하고도 위험을 간과할 수 있는 ‘회색코뿔소’에 비유된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투입한 재정이 300조원에 육박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지금부터 출산율이 좋아져도 만족할 통계가 나오려면 최소 10년이 걸린다. 골든타임이 지난 건 아닐까 걱정이다.
위기의식도 낮다. 우리나라 인구 정책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결정한다. 정부와 국책 연구기관, 재계·노동계·전문가 등이 참여해 정책을 논의하지만 한계가 명확하다. 2005년 설립된 이후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이 시행 중이지만 지금까지 전체 회의는 1년에 고작 두 번에 그쳤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저출산위 회의를 주재한 게 7년 만이라는게 놀랍지도 않다.
‘무늬만’ 컨트롤타워일 뿐 개별 부처에 저출산 과제를 촉구하는 식이어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 힘들다. 부처마다 실적을 내려다 보니 면피성 사업이 많아졌고,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사업도 부지기수다. 양육비·생활비 지원 등 갈증에 목만 축이는 미봉책으로는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대한민국의 희망이다. 선거만 생각하는 ‘정치꾼’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인’이 나서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