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불면·악몽·공황장애’라던 용산구청장, 이태원 유가족 출근 저지에도…이미 출근

이정민 유가협 대표 권한대행 “박 구청장은 다시 복귀할 게 아냐”
“직을 내려놓고 내려와서 사죄하고 무릎을 꿇고 통한의 눈물로 그날의 잘못을 반성해야”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청에서 전날 보석으로 석방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출근을 막으려 구청장실에 진입하려 했으나 잠긴 문에 가로막혀 있다. 공동취재 뉴스1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첫 출근하는 8일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선 유가족들과 구청 직원들이 충돌했다.

 

이날 오전 8시쯤부터 서울 용산구청 정문 앞 인도에는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유가협)와 시민대책대회의 활동가 30여명이 피켓을 들고 서성이며 박 구청장의 출근을 기다렸다.

 

이정민 유가협 대표 권한대행은 "박 구청장은 다시 복귀할 게 아니다"라며 "직을 내려놓고 내려와서 사죄하고 무릎을 꿇고 통한의 눈물로 그날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공직자로서 자격 없다, 박희영은 사퇴하라" "용산 주민과 이태원을 찾는 시민들의 안전을 맡길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송진영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직무대행이 8일 오전 서울 용산구청 앞에서 열린 용산구청장 사퇴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유가족들은 정문과 주차장 입구 등으로 갈라져 박 구청장 출근을 기다렸지만 오전 8시15분이 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자 구청 로비로 진입해 9층에 구청장실로 올라갔다.

 

구청장실 앞에 도착한 유가족들은 격양된 듯 "문을 열라"고 외치며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이어 문 손잡이를 잡아당기는 유가족들을 구청 직원들이 제지하면서 몸싸움이 시작됐다.

 

현장 분위기가 격화되자 인근 이태원파출소 소속 경찰관 4명이 구청장실 앞 복도로 올라와 충돌을 막았다.

 

30여분간 구청장실 앞에서 대치하던 유가족들은 일단 오전 9시쯤 박 구청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기 위해 청사 정문 앞으로 물러났다.

 

유가족들은 회견에서 "우리는 박 구청장이 법정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며 철면피 같은 태도로 일관했던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감당할 수 없는 공직을 내려놓고 자진해서 사의를 표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이정민 유가협 대표대행은 "(박희영) 이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를 막아섰던 구청 직원들이 희생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사죄하고 물러나는게 맞다고 박 구청장에게 얘기하면 좋겠다"며 "우리는 박 구청장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한 행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들은 이후 서울시청 앞 광장 분향소에서 국회 앞 농성장까지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를 호소하는 159㎞ 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박 구청장은 평소보다 이르게 출근해 이미 청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유가족들과의 조우를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배성중)는 전날 오전 업무상 과실치사상 및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 직무유기 혐의로 각각 구속 기소된 박 구청장과 최원준 전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에 대해 서약서 제출, 주거지 제한, 보증금 납입 등 조건으로 보석 청구를 인용했다.

 

박 구청장은 곧장 보석보증보험증권 3000만원, 현금 2000만원 등 총 5000만원의 보증금을 내고 풀려났다. 박 구청장 등이 풀려난 것은 지난해 12월26일 구속된 지 5개월여 만이다.

 

이태원 참사 부실대응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7일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구치소에서 보석으로 석방돼 나오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는 박 구청장과 최원준 전 용산구청 안전재난 과장의 보석 청구를 인용했다. 뉴스1

 

유가족들은 전날 오후 박 구청장이 풀려난 구로구 서울남부구치소 앞에서 차도에 눕거나 계란을 던지며 보석 결정에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앞서 지난 2일 열린 첫 보석 심문에서 변호인은 "피고인은 상당한 고령이며 사고 직후 충격과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로 신경과에서 처방받아 진료받는 상태”라며 “수감 후에는 상태가 악화해 불면과 악몽, 불안장애,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으며 구치소에서 최대한 약을 처방받아 치료에 매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태"라고 밝혔다.

 

박 구청장은 재난·안전 관련 1차적 책임이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및 소관 부서장으로서 핼러윈 축제 기간 이태원 일대에 대한 실효적인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 시행하지 않았고,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적절히 운영하지 않고 경찰·소방 등 유관기관과의 협조체계도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는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